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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Apr 01. 2022

우리 식구가 밤마다 하는 일

글짓기 시간/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칠레 편


저렴하고 질 좋은 와인으로 유명한 나라, 남미의 칠레는 문학도 풍성한 나라였다.

시련이 많으면 이야기가 많아지기 마련이다.

영화 같은 환경 소설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도, 진짜 영화가 된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도 칠레의 자연, 역사가 담긴 이야기다.

이탈리아어 일포스티노는 ‘우편배달부’, 원작만큼 경이로웠던 영화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삶이 모티브가 된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시골의 순박한 청년이 위대한 시인을 만나 우정과 사랑과 메타포를 알아가며 점점 인식의 세계가 확장되는 과정이 유머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그려진다.


<글짓기 시간>은 이 작가의 다른 책, <신의 첩자들: 압제에 저항하는 이야기>라는 단편집에 실린 작품으로 작가가 어린이를 위해 고쳐 써 그림책이 되었다. 2003년 유네스코 아동 문학상을 받았고 독일에서는 방송극으로도 발표되어 이 달의 드라마에도 선정되었다 한다.


여러 칠레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는 17년 동안 이어진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이다. 위에 언급한 작가들도 군사 독재를 피해 여러 나라를 떠돌았던 공통점이 있다.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부가 미국을 등에 업고 쿠데타를 일으켰고, 당시 민선 대통령이던 살바도르 아옌데는 자살하고 반란군은 정권 탈취에 성공한다. 피노체트의 독재가 얼마나 무자비하고 지독했던지 국민들이 옆 나라, 역시 군사독재 국가였던 아르헨티나로 도망갈 정도였다. 자유로운 체제를 갈구하는 지식인, 예술가들의 정치적 망명도 많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 이야기는 암흑 같았던 그 시절, 평범한 동네 사람들 삶 속으로 들어갔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 페드로의 부모님은 밤이면 감이  라디오 소리 항상 귀를 기울이고 슈퍼 주인인 친구 다니엘의 아버지는 대낮에 군인들에게 잡혀 간.  예사롭지않은 분위기에 이유를 묻는 페드로, 다니엘은 “독재를 반대해서.”라는 대답을 한다. 반독재는 부모님이 밤마다 듣는 라디오에서 들은 말이고 학교 담벼락에도 적혀 있다. 엄마는 다니엘 아빠 소식에 소리 죽여 흐느기기까지 하는데군인들은 다음날 학교에까지 나타났다. 금메달을 걸고는 글짓기 대회를 개최하러  것이다. 모든 아이들에게 일률적으로 주어진 글쓰기 제목은 


우리 식구가 밤마다 하는 일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하던 반공 글짓기, 포스터 그리기, 웅변대회, 그리고  서서 학교 가기 등이 생각난다. 아이들의 삶이라고 사회와 분리될 수는 없다. 어쩌면  교묘하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사고를 잠식하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아이들 글쓰기는 놀랍고 비겁하게도 반독재 시민을 색출해 내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페드로는 과연 식구들이 밤마다 하는 일을 어떻게 적었을까???

그 뒤로는 모릅니다…. 왠지 의도한 것 같은 이 문장, 그런데 페드로는 잘 알고 있는것 같다.

페르로가 읽는 글을 숨죽이며 귀 기울인 아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체스 판을 하나 사 두어야겠다고만 말한다.


짧은 이야기지만 몰입감을 주기도, 비슷했던 동시대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기도, 그리고 세계가 점점 많은것을 공유하는 요즘, 평범한 시민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우편배달부 마리오도 동네 축구스타 페드로도 주변을 알아차리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행동했다. 라디오가 뭐가 재밌냐고 묻는 페드로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 우리나라에 관한 일 말이야."



역사의 공과를 설득하는 힘은 이념의 프레임으로 재단된 선악의 서사보다는,

개인의 소소한 선택들이 모여 변화하는 세상을 스스로 응시하게 하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사람에 의한 상처로 미쳐가던 왕의 마음을 되돌린 것은 거창한 국가관이 아닌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였다. 직접 경험의 한계를 가진 인간이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통한 간접 경험의 확대일 수밖에 없어서다.


- 박선화 한신대 교수 칼럼, <파친코, 피와 뼈… 이야기는 힘이 세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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