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받은 적 있다

침묵의 꽃길

by 여름지이


한창 수분할 시기인 과일 농가에 벌이 오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일일이 사람이 붓으로, 드론으로, 벌들이 하던 일을 하고 있었으나 역부족이다. 마트 진열대에서 쉽게 만나는 과일, 고기들의 지나온 시간을 상기시키는 뉴스를 들으면 난감하다. 생명이 상품이 되어버린 현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생각하지만, 또 그저 생각만 할 뿐이다. 마침 이웃 작가님 글에도 사라져 가는 꿀벌 이야기가 나오니, 현실에 반하는 꿀벌 풍요의 시대? 였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기 쉬운, 벌들을 받았던 어느 초여름 날이 떠올랐다. 벌이 몰려온 걸 ‘받았다’라고 하는 건 이 세상을 구십 년 동안 살고 있는 운자 씨 표현이다. 꽃과 설탕을 먹여 꿀까지 받아내야만 완전한 받기지만, 뜻밖의 출현 만으로도 받은 게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쓰고 싶다. 지난날을 들추는 건 자칫 노스탤지어가 되어 현실이 더 안타까울 수도 있으나 오래된 미래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때도 요즘처럼 이사를 해 눈뜨면 펼쳐지는 새로운 환경에 살짝 달뜨기도 외롭기도 한 시기였다. 가장 새로운 건 오래된 나무 몇 그루와 조그마한 텃밭까지 있는 수수한 주택, 살이가 신기해 마당에 나가 앉아있곤 하는 시간이었다. 현관문을 열면 정면에 담을 등지고 목련(자줏빛), 동백나무(핏빛),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고목이 있었는데, 빨간 열매를 맺는다고 누가 산호수라고 했다. 한참 지난 후 ‘아왜나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산과 호수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 ‘아왜낭’에서 온 이름이라니 산호수란 이름이 틀린 건 아니다. 둥치에 비해 가지와 잎이 그렇게 무성하지 않아 별로 눈길을 끌지 않았던 그 나무에 꽃이 피면서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사실 꽃이 핀 줄도 몰랐다. 웅웅 거리는 소리에 마당으로 나가보기 전에는.


아왜나무 한그루를 에워싸고 주변이 시끄러울 정도로 벌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에 잠깐 넋을 잃고 있다가 그때서야 마당을 가득 채운 꽃향기가 솔솔 느껴졌다. 밤꽃, 쥐똥나무 꽃처럼 결코 향기롭진 않으나 한껏 핀 유백색 자잘한 꽃들이 뿜어내는 냄새는 강렬했다. 눅눅한 공기는 벌들을 불러들이는데 일조를 했는지 날씨가 습했다. 벌들의 꽃잔치는 하루로 끝나지 않아 완전히 물러나기까지 사나흘이 걸렸다. 전화 온 운자 씨한테 지나가는 말로 벌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놀라며 자못 진지하다. 그러면 꿀벌을 받은 거네… 이사 온 집에 그런 일이 있으면 재수가 좋은 거야 , 기다려봐! 재수가 좋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살던 아파트를 팔아 빚 청산하고 나름 선택이라고 들어간 임대 주택살이 시절을 식구들은 각자의 관점으로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집이 불편했다는 운은 처음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아늑했다니, 제일 재수 좋았던 사람이다.


온 동네가 꿀벌을 받은 곳도 있더라.

저 멀리 독일 하이델베르크 근교 네카하우젠이란 마을이다. 3년 전 여름, 난 아무런 연고, 목적 없이(여행이란 이름이 있지만) 그곳에 있었고 이른 아침 동네에 딱 하나 있는 빵집을 향해 걸어간 적이 있다. 청명한 공기와 온 동네에 향수 뿌려놓은 듯한 라벤더 향에 짐짓 놀라며 걷고 있는데, 곳곳의 라벤더 무더기에 달라붙어 있는 벌떼들의 왕왕 거림이라니! 꽃이 있는 곳엔 언제나 세트가 되어 그러고 있었다. 그 벌들이 라벤더 꽃에만 있었을까. 도착한 빵집에도 이미 자연이 되어 있었다. 개별 포장이라고는 모르는 듯한 그곳의 빵들은 카운터 주변으로 쌓여있었고 벌들은 연신 그 공간을 날기도 빵에 붙기도 했다. 주인과 다른 손님들은 무심하게 빵만 생각하고, 이방인은 벌을 생각하며 놀라고 찝찝하고 걱정했다.



이사의 끝이 보일 무렵, 알고 있는 곳을 향해 나섰다. 지난 늦겨울 새로 살게 될 곳을 미리 둘러보다 발견한 자작나무 길이 생각 나서다. 좋아하는 나무길을 발견하며 횡재한 기분은 배반하지 않아 이사 피로를 덜어줄 것 같았다.


강변에 있다고 ‘강변마을’이란 이정표가 있는 그곳도 온 산하가 제법 연둣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그 길 자작나무에 연둣빛 어린잎이 차랑차랑 할 거라 기대했었는데, 눈에 들어온 건 숨막히게 빼곡한 하얀 관목 덤불이었다. 키 큰 자작나무를 올려다보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조팝나무 덤불, 발견했다 하더라도 마른 가지의 봄을 짐작했으려나. 알아보지 못한 이에게 제대로 각인시키 듯 절정을 이룬 꽃과 향기는 조용하나 화려하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인적이 드물었고 해질 무렵 저기압 때문이었을까. 모퉁이를 돌아도 이어지는 꽃들의 향연, 짙은 향, 착 가라앉은 분위기... 뭐가 썰렁하다. 벌이 한 마리도 없었다! 분명 조팝나무 꽃은 벌을 부르는 향기다. 벌들이 좋아하는 밤나무, 아카시아… 아왜나무 꽃냄새를 닮았다. 단정하니 사람을 위한 꽃길에 가깝지만 꽃들에게 필요한 건 사람의 발길이 아니라 중매쟁이 벌들의 출현이다. 정말 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꽃과 벌은 사람이 필요없지만 사람은 그들이 필요하다.


* 덧) 댓글을 써주신 김건숙 작가님이, 오래 살고 계신 어머니의 표현 ‘벌을 받다’ 라는 말이 벌의 관점이라는 말을 해주셨다. 자연을 대하는 옛어른들의 겸허한 마음의 자세가 언어에 배여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작금의 현실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벌을 받다, 깊이 새기고 유지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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