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의 아이들

by 여름지이


옥구슬처럼 맑은 냇가란 뜻의 ‘옥천’이란 지명은 전국에 더러 있는 듯하다.


대표적인 곳이 충청북도 옥천군. 그런데 알고 보니 여기서 ‘옥’은 비옥하다 할 때 그 옥자였다. 진짜 옥구슬 ‘옥’ 천은 양평군 옥천면으로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 양평으로 이사를 결심하고 제일 먼저 알아본 곳이기도 하다.

벚꽃길이 좋은 설매재란 곳을 찾아갈 때 큰 도로에서 들어서면 바로 나오는 곳이 옥천면 면소재지였다. 시골답지 않은 정비된 길, 나지막이 두르고 있는 산자락과 동네 중앙에 흐르고 있는 큰 냇가는 어쩌다 떠돌며 살고있는 이의 마음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옥천이 이 냇가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고, ‘사탄천’이라는 정식 이름이 의아스럽고도 재밌었다.


옥천 냇물이

강은 매끄럽고, 구불구불하고, 통통한 동물 같았다. 이 동물은 꼴꼴 거리며 무언가를 쫓아가서 콸콸거리면서 붙잡았다가 쏴쏴거리면서 놓아주었다. 그리고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는 새 친구들의 뒤를 다시 덮쳤다. 강의 새 친구들은 붙잡혔다가 놓여 나기를 되풀이했다. 이 동물은 반짝거리면서 번쩍거리면서 팟팟거리면서 찰찰대면서 윙윙대면서 졸졸거리면서 보글거리면서 몸서리를 쳐 댔다. 동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중

요렇게 흘러 동네를 벗어나면 너른 남한강 물결에 폭 안긴다.

우리 냇물 수준에 가까운 걸 강이라고 이렇게 표현한 영국 사람 ‘케네스 그레이엄’이 보면 아마 바다로 착각할지도 모를 남한강. 인근 물길을 다 안는 남한강은 바다처럼 넓지만 바다처럼 탐욕스럽지 않다. 잔잔하고 푸근할 뿐이다.

난 물고기도 아닌데 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더라. 강 가까이 살면서 알게 되었다. 물 만난 고기같이 늘 살아있는 느낌이란 걸.

요즘 같은 장마철은 옥천이 빛나는 계절이다. 냇가에 물이 많아지고 더불어 물 만난 고기도 진짜 많아진다. 비록 옥천면에 입성은 못했지만, (그놈의 생활이 뭔지)읍에 살며 자주 들락거리고 있다. 마음이 어지럽고 두근거릴때 흐르는 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앞으로만 가는데 어느새 뒤돌아 도닥거려 준 듯 마음은 가벼워지고 안정을 찾는다. 확진자로서 격리 해제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더 참지 못하고 우리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집에 계속 같이 있으며 별것도 아닌 것에 서로 짜증이 올라왔지만 이곳 물소리를 들으니 원래의 우리로 돌아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 앞에서 그냥 흡족한, 말이 고와진다.

돌다리도 건너고

냇가의 수줍은 나리 앞에서 지나온 여름들을 생각하고 지금 여름을 새겨본다.

지난주 왔을 때 아빠랑 물놀이 온 한 꼬마가 잔망스런 표정으로 야생 오리가족을 쫓아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재밌어 우리 늙은 어린이들도 한번 해보았다. 시골소녀였던 난 거침없이 물속에 뛰어들었지만 도시 소년이었던 운은 좀 어색하다. 그리고 늘 그렇듯 물속은… 아무리 개천 물이라도 발을 디딘 순간 물쑥하니… 약간의 공포감, 곧 다가오는 물결의 부드러움에 안심이 된다.

흑백사진 속 유년의 여름 냇가는 왁자지껄 아이들 노는 소리가 가득했지만 지금 옥천은 때때로 한적하기까지 하다. 온 아이들이 모두 커버려 서일까. 그 곳은 아니지만 실같은 핏줄처럼 결국엔 맞닿아 있을 옥천은 잊기도 잃어버리기도 한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여러 날이 지난 후)

다시 큰비가 내린 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어느새 옥천면에 또 이르렀다. 뉴스에는 물난리로 중부지방이 재난 현장이었으나 너른 물길을 곳곳에 터놓은 이곳은 다른 세계였다. 물이 더 깨끗하게 많아진 옥천면 동네에 넘쳐나던 아이들 사람 소리는 길가던 이를 붙잡아 절로 발을 담그게 했다. 너른 돌팍에 앉아 둘러본 주변의 풍경과 그 풍경이 뿜어낸 공기, 당장이라도 덮칠 듯 잔뜩 끼인 회색빛 비구름, 이날의 분위기를 어찌 어설픈 글로 담아낼 수 있을까.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 중 60번 시를 불러오면 조금 연결되려나. 세상의 끝일지언정 물이 있는 곳에 언제나 모여드는 아이들, 두려움을 모르는 아이들, 동네에 포근히 안긴 옥천면 아이들.

세상의 끝없는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길이 없는 하늘에서는 폭풍우가 돌아다니고, 자취가 남지 않는 바다에서는 배들이 난파합니다. 죽음은 바다 위를 떠돌지만, 아이들은 놀이에 열중합니다. 세상의 끝없는 바닷가에 아이들이 하나 가득 모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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