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꽃

by 여름지이



오래된 아파트, 남향집 한겨울은 양과 음이 확실하다. 거의 하루 종일 햇살이 머무는 앞 베란다엔 게으른 주인의 빈약한 화분에도 늘 꽃이 피고 진다. 반면 부엌 쪽 뒷베란다는, 가보지 않은 시베리아 벌판이 아마 이럴지도.

북풍에 몸서리치며 문을 열면 닫기가 바쁘다.

그곳 김치냉장고에 갈 때면 꼭 시골집 마당 장독대 가는 기분으로 작은 결심을 하고 후딱 나가 일을 잽싸게 보고는 부리나케 들어온다. 세탁기는 또 참… 한번 어는 걸 경험한 이후 수도꼭지에 열선을 감고 세탁 후 늘 수도배관을 빼놓는 번거로운 일을 하고있다.


2월이 더 춥더라, 운이 말했다. 언제나 강아지였던 정이가 떠난 달이라서 그런가. 봄을 기대하는 마음 때문 아닐까,로 얼버무렸지만 나 역시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영하로 다시 내려갔어도 나가보면 한겨울 그 추위는 분명 아니었다. 봄을 가까이 두고 더 춥다고 느끼는 건 해뜨기 전 어둠이 깊은 거랑 같은 이치려나.


이럴 땐 카를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이 보고 싶어 진다. 오랫동안 글을 쓰며 정원을 가꾼 이가 전하는 열두 달의 실체와 감성은 어떤 달도 사랑스럽지 않은 달은 없다. 거기다 한때 개콘을 보며 속절없이 터지던 웃음이 절로 나오는, 가드닝 분야의 고전, 명저라는 책이 이렇게 유머로 가득해도 되는 것인지. 역쉬 변덕쟁이 2월이, 하하! 매우 위험한 시기이니 명심하잔다.

2월은 일 년 중 가장 짧은 달. 열두 달 가운데 가장 덜떨어진 애송이 달이다. 하지만 꼴에 변덕스럽기 그지없을 뿐 아니라 교활하기로는 열두 달 가운데 단연 최고다. 그러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낮에는 꽃망울을 덤불 밖으로 살살 꼬여내어선 밤이 되면 얼려 죽이고, 당신을 한껏 유혹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얼간이 취급을 하는 게 바로 2월이다. 신께서는 윤년이 오면 왜 많고 많은 달 중 하필 제일 까탈스럽고 지긋지긋한 이 녀석에게 하루를 더 하사하시는 걸까. 차라리 5월을 32일로 늘린다면 아름다움을 하루라도 더 누릴 수 있을 텐데!

얼간이,, 맞는 말이다. 늘 속으면서 또 기대하니. 아, 며칠 전 유혹하던 봄기운에 그만 보온메리 외출 내복을 빨아버렸다.


내친김에 3월로 가지 않고 1월로, 겨우 통과한 그 추운 겨울로 되돌아갔다.

난 얼간이니깐.

1월을 대표하는 식물은 무엇일까. 바로 창유리에 피어나는 성에꽃이다. 성에꽃이 만발하려면 방 안 공기가 훈훈하면서 적당히 습기를 머금고 있어야 한다. 실내가 건조하면 꽃은커녕 작은 가시 하나도 돋아나기 힘들다. 그리고 창에 빈틈이 있어야 한다. 바람이 창틈을 비집고 불어 드는 바로 그 자리에 꽃망울이 맺히기 때문이다. 성에꽃은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더욱더 탐스럽게 핀다. 부잣집 창문이야 바람 한 줄 새어 들 틈이 없이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일에 핀 성에꽃. 꽃보다는 잎에 가까운, 당근, 파슬리 잎을 닮았다.





겨울이 옴팡지게 들어와 있던 그 베란다에 딱 하루 피었던 성에꽃을 꺼내보며 가는 겨울을 놔 줘야겠다.










*정원가의 열두달/ 카렐 차페크 글, 요제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역/ 펜연필독약,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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