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 알기
헝가리 출신의 소설가 아고타 크리스토프(1935~ 2011)는 스위스에 거주하면서 프랑스어로 글을 썼던 사람이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여파를 피해 남편과 4개월 된 딸을 데리고 난민 신세가 되어 스위스로 이주하게 되는데, 그곳의 언어 프랑스어를 배우며 희곡과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글쓰기의 언어가 성인이 되어 새로 배운 언어였다. 성숙한 정신을 완성되지 못한 이방인의 언어로 표현한 그녀의 글은 그래서 신선하며 담백하고 쉽다. 백수린 작가가 옮긴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 <문맹>에서 와닿는 문장을 책의 차례대로 옮겨 본다.
시작
-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 아버지는 내게 그림책을 건넨다.
“가서 앉아라.”
나는 교실의 뒤편, 가장 큰 아이들 뒤쪽에 언제나 있는 빈자리로 간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알아챌 새도 없이, 완전히 우연한 방식으로 독서라는 치유되지 않는 병에 걸린다.
말에서 글쓰기로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 것은 한참 후, 어린 시절을 감싸던 은銀실이 끊어지고, 불행한 날들이 찾아오고, 내가 “그때는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말할 그런 시절이 도래했을 때의 일이다.
시
뭔가 읽을 것이 있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나는 계속 읽고, 그러고 나면 울면서 잠든 밤 사이에 문장들이 태어난다. 문장들은 내 곁에 맴돌다, 속삭이고 리듬과 운율을 갖추고, 노래를 부르며 시가 된다.
어제, 모든 것은 더 아름다웠다.
나무들 사이의 음악
내 머리카락 사이의 바람
그리고 네가 내민 손 안의
태양.
어릿광대짓
우리, 배우들은 음식이나 돈을 구별 없이 받지만, 어쨌든 우리가 받는 가장 큰 보상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는 행복감이다.
모국어와 적어
내가 프랑스어로 말한 지는 30년이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이 더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敵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스탈린의 죽음
- 내가 아는 한, 어떤 반체제 러시아 작가도 이 문제를 언급하거나 다루지 않았다. 자신들의 폭군을 견뎌야 했던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러니까 그뿐 아니라 외국의 지배, 즉 그들의 지배까지 견뎌야 했던 ‘중요하지 않은 작은 나라들”에 대해서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기억
- 나의 어린 딸은 아이 아빠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고 나는 두 개의 가방을 들고 있다. 둘 중 한 가방에는 젖병과 기저귀, 아기에게 갈아입힐 옷이 있고 다른 가방에는 사전들이 들어 있다.
- 흥미로운 것은 내가 그날 밤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 혹은 다른 생에서 일어난 일 같다. 마치 내 기억에서 내 삶의 커다란 부분을 잃어버린 그 순간을 떠올리기를 거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제자리에 있지 않는 사람들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어렵고 더 가난했겠지만, 내 생각에는 또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나는 글을 썼으리라는 사실이다.
사막
나는 그에게 소련인들이 무섭지 않고 만약 내가 슬프다면 그것은 오히려 지금 너무 많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직장과 공장, 장보기, 세제, 식사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것도, 할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잠을 자고 내 나라 꿈을 조금 더 오래 꿀 수 있는 일요일을 기디리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에게 말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에게, 그의 기분을 상하지 하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짧은 프랑스어로, 그의 아름다운 나라가 우리 난민들에게는 사막, 사람들이 ‘통합’이라든지 ‘동화’라고 부르는 것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가 건너야만 하는 사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어떤 이들은 끝끝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는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한 짧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이 짧은 글들이 어느 날 책이 될 것이라고는 아직 조금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2년 후, 내 책상 위에는 마치 진짜 소설처럼 처음과 끝이 있고, 일관성을 지닌 이야기가 담긴 커다란 노트가 놓인다.
-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문맹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선택이 아니라 운명으로 주어진 언어, 모국어도 그러하지만, 저절로와 의식적으로 배워야 되는 상황, 강제된 일이라는 게 다를 것이다. 살다가 문맹이 된다는 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 더군다나 글 쓰는 사람에게.
그녀의 역작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읽기 전에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서 읽어 보았다. 쉽고 간결한 문체로 이렇게 자신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얇은 책이지만 충분히 암울했던 시대와 글 쓰는 사람으로서 그녀의 삶이 진하게 다가온다. 화려한 수식어와 묘사가 풍부하지 않아도 행간은 새로운 언어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품고 있다. 프랑스어로 글을 쓴 지 20년이 되어도 여전히 사전들 도움을 받아가며 글을 쓰고 모국어를 죽이는 것 같아 ‘적의 언어’라 부르지만 결국 작가에게 프랑스어는 글쓰기 언어가 되지 않았을까? 비슷한 상황을 겪은 알제리 여성작가 아시아 제바르의 소설 <프랑스어 실종>에 나오는 주인공 ‘베르칸’이 생각 나서다. 추억을 글로 쓰면서 프랑스어가 기억을 되살리는 언어가 된다고 했다..
어려운 일을 많이 겪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기억에 대한 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더욱 궁금해진다. (침묵하는, 움직이지 않는, 굶는) 훈련을 했다는 어린 시절, 전쟁, 난민 등… 모범의 작가로 언급한 오스트리아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책처럼 끔찍한 내용이 될 수도 있지만, 삶에 대한 ‘아니오’가 무엇이기에, 진정 끔찍한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는데, 세상 곳곳에 끔찍한 일이 멈추길 바라며, 읽고있는 안락한 자리가 불편하길 바라며 읽을 것이다.
* 문맹/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한겨레출판,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