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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Jun 07. 2022

마르케스의 책들

마술적 사실주의의 세계

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콜롬비아 편


노벨상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에는 제목만으로도 유명한 <백년의 고독>이 있고, 코로나 시대라고 꽤 많이 언급된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있다.

지난날이 되어버린 오프 책모임에서 각자 책을 소개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주는 이벤트를 연말에 했었다. 단지 민음사 세계문학(책장에 모으기용)이라는 이유로 <콜레라 시대의 사랑 1,2>에 잽싸게 손을 들었고, 지금까지 고이 모셔두기만 했다.

지난달 온라인 글쓰기 모임은 콜롬비아 편, 읽어야 할 시간이 왔다. 오래간만에 연애소설에 빠져보려나 기대감을 갖고 펼치니 이야기 윤곽이 들어올 때쯤 주인공?으로 보이는 노부부 생활 이야기가 더 세세히 그려진다. 조금 의아스러웠지만 나쁘진 않다. 오히려 청년보다는 노년에 가까운 나이라 솔깃해졌다. 특히 나이 든 남편의 화장실 사용 애로사항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시대를 막론한 현실 이야기에 웃음이 푹 터졌다. 양변기는 절대로 남자를 위한 게 아니라는, 나이 들어 힘없어지면 앉아서 눌 수밖에 없다는, 바로 딸친아(딸 친구 아빠) 이야기였으니.

대중에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가인 마르케스의 소설 중 가장 대중적이고 잘 읽히는 소설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근데 사랑이야기는 언제 나오는 걸까???

오줌을 앉아서 누던 늙은 의사 선생님이 돌아가시던 날 부인의 옛 애인이 느닷없이 나타난다. 역시 늙어서. 그리고 지금을 있게 한 그들의 지난하고 진부한 젊은 시절 사랑이야기가 그제야 시작되었다. 정말 나이 탓일까. 원래 장편은 2권으로 넘어갈 때 재미에 가속도가 붙어야 되는데,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고 갈등이 일었다. 계속 읽어 말아? 결국 감정 고문 같아 읽기를 그만두었다.



정말 마르케스는 쉽지 않군…. 그렇다고 백 년의 고독을 읽기엔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고, 그래서 도서관에서 찾은 게 <썩은 잎>이다. 마르케스의 초창기 소설로 ‘마술적 사실주의가 시작된 ‘마술적 데뷔작’ 이란 문구가 표지에 적혀 있다. 다른 이들의 글과 <집>이라는 원제로 짐작하면 <백년의 고독>의 전신쯤으로 여겨진다. 마콘도’라는 가상의 마을이 그렇고 미국식 자본주의가 불러온 황금만능으로 황폐화되어가는 사람들의 삶, 전반적으로 짙게 깔린 고독이 그랬다.

시간과 화자가 수시로 바뀌어 분량이 적음에도 읽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으나 퍼즐 맞추듯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느리게 구성되어 가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서술 방식이 그나마 익숙했던 이유는 미국 편에서 읽은 월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은 경험이 도움 된 것 같다.  한 사람이 죽고 그 사람의 장례식을 중심에 두고 여러 명의 ‘내’가 이야기를 풀어내고 각 이야기들은 퍼즐 조각이 되어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실제로 마르케스는 포크너 작품을 통해 이 기법을 배웠다 한다.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오마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포크너 소설이 열흘의 이야기라면 이 소설은 단 30분의 이야기다. 1928년 9월 12일 두 시 반에서 세 시까지 시체를 두고 이야기하는 3명의 화자가 있다.  퇴역한 대령과 그의 딸 이사벨, 그리고 그녀의 어린 아들, 이렇게 3대가 죽음의 장소에서 시체를 관에 넣어 바깥으로 운구하기 직전까지 30분이라는 시간 속에서 각자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 속에는 콜롬비아의 시대적 상황과 아픔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마을 공동체, 여러 개인들의 삶이 엮어져 은근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늘 그렇듯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뮌가 비슷하고 반복된다는 사실을 남기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건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현실을, 나를, 객관화시키는 과정이며 결과적으로 현실을 잘 살아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남미 문학의 특징이자 이 책이 표방하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꼽씹어 보니 그런 면에서 닮았다. 마술과 사실은 상반된 의미인데 함께 있다.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듯하지만 현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 사건과 신화는 현실 세계 어딘가에서 교묘하게 교차되어 신비롭기도 처절하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은 어떤 예기치 못한 일이 옆에서 일어나도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쪽과 저쪽을 넘나 든다. 보이지 않는다는 99%의 세계가 그들에겐 열려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그렇고 민담으로 전해오는 세계 여러 나리의 옛이야기들이 그렇다. 환경오염, 전쟁, 나쁜-사람임금독재자 등, 옳지 못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고도 사람들은 위험을 어려움을 이야기를 통해 서로 공유하며 물리칠 방도를 모색해 왔다. 누군가는 무용하며 현실회피라고 치부하는 허구의 세계가 진정 허구이기만 할까. 진흙에서 피어난 맑간 연꽃처럼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세계이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남미 문학의 특징이라면 그곳의 지나온 세월이 녹녹지 않았으며 열정적인 그들의 저항의식은 그렇게 표출되었을지도 모른다.


마르케스는  소설에 등장하는 이자벨의 아들처럼 부모의 부재를 메꾸어준 외조부모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외할머니는 종교와 지역 미신이 혼합된 특별한 세계관으로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야기를 양껏 먹고 자란 아이는  끝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세계를 세계가 인정했지만 진정 누릴  있는 사람은  명이나 될까?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감히 젖어들   절망한다.    

백년의 고독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다들 아우성이었다.


‘(…)이 남자가 처음으로 우리 식탁에 앉아 먹을 풀을 달라고 했던 1903년의 그날과 같은 시간이야.’ 그때 아델라이다는 말했다.

“어떤 풀을 원하시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 그러자 그는 여전히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되새김 동물처럼 웅얼대듯이 짧게 대답했다. “일반 풀입니다, 부인. 당나귀들이 먹는 그런 풀입니다.” <썩은 잎> p34


요정도는 괜찮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민음사, 2019

*썩은 잎/ 민음사, 2016

*송병선 역자의 후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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