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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돌린 소리에

지브리 영화, 바람이 분다 ost 중 <여로- 몽중비행>

by 여름지이


일상에 스며든 알고리즘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지브리 애니의 세계로 불쑥 데려다주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이라는 글귀에 꽂혔다. 은퇴를 번복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지만, 결국 했구나. 2013년도 영화니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그렇게 보게 된 영화 <바람이 분다>


단짝인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더 아련하게 깊어져 요즘 같은 늦가을을 닮아 있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의미심장한 시구로 시작하는 첫 장면에 홀려 흐르는 음악을 놓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음악은 또랑물처럼 계속 흘러 다음 장면에서 본색을 드러내는 듯하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었던 소년, 그의 꿈속 비행에 누구라도 합류하게 만든다. 몸은 붕떠 공기 속을 가르고 우리는 소년이 된다. 멜로디가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장치한 악기들 소리는 소년의 미래가 밝고도 쉽지 않을 거라고 예견하는 것 같다. 기타가 아닌 만돌린, 하모니카 혹은 반도네온, 이름만으로도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이들의 조합은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로 데려가 전쟁이나 나라가 아닌 꿈을 위해 살았던 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준다.. 비록 비행기는 아름다워도 저주받은 꿈이 되었지만, 살아가야 했던 사람.


개봉 당시 국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고 흥행에 실패했다. 일본의 군국주위 상징인 전투기 ‘제로센’을 개발한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를 내세워 전쟁을 미화하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욱일기와 또 다른 전범 국가인 독일까지 등장하니 도대체 무얼 말하려는 건지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다. 자연과의 공존, 반전이라는 인류의 이상적인 가치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어낸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일본스럽고 현실적이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꿈 비행기가 살상 무기로만 쓰이는 현실 앞에서 고뇌하는 어른 지로의 모습, 또 그럼에도 끊임없이 곡선에 비행기에 몰두하는 설계사 지로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을 닮았다. 전쟁으로 일어난 집안 경제력 덕분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투기 같은 무기를 좋아하는 반전주의자 자신을 말이다.

은퇴작에서만이라도 거장이 아닌 스스로 모순적인 인간, 미야자키 하야오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로맨스도 전쟁 미화도 아닌 기품 있으며 조용한 열정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시대가 만든 쓸쓸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영화를 완성하는 ost 중 <여로- 몽중비행>이 들어왔던 건 순전히 만돌린 소리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류트족 악기 만돌린은 소리가 옛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겨우 오십넘은 사람이 생각하는 옛 정취를. 어디서 들어본 적 있으나 이름은 몰랐던 만돌린 소리, 기타 소리를 닮았으나 훨씬 맑고 둥글다. 두 현이 한쌍을 이루는 복현 구조라 표현에 한계가 있지만 그만큼 연주하기 쉽고 무엇보다 떨림음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단다. 감성을 자극하는 소리가 바로 그 떨림이었다. 비발디도 바이올린 연주자였지만 만돌린 협주곡도 만들었다.

만돌린 소리에 더 가을 감성을 더하는 소리는 하모니카인지 반도네온인지 구분이 잘 안 가지만 하모니카 쪽에 무게가 더 실린다. 해질 무렵 가을 들판이 떠오르는 소리에 우리는 소소한 인간으로 돌아간다.


https://youtu.be/qYNvTX_ioYo



음악을 올린 글이 딱 두 편 있다. 의도치 않았지만 모두 가을에 올린 글들이다. 그래서 ‘가을의 노래’ 란 매거진을 만들어 보았다. 1년에 한 번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들려줄 음악을 고르는 시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사실 작년에 이런 마음을 먹고 내년, 그러니까 지금 가을을 기다렸었는데 막상 가을이 되고 보니, 작년 가을과 올 가을의 나는 살짝 달라 그때의 작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왠? 무슨 음악? 귀찮아졌다. 벌써 가을도 끝물이라 이러다 넘어가는 거지 뭐, 이런 생각마저도 안 했는데, 영화에서 한 곡을 건졌다. 만돌린 현의 떨림에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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