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 of convenience의 <homesick>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을 수집하던 시절이 있었다. 함께 장착된 카세트 플레이어에 공테이프를 넣어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여러 버튼 중 녹음버튼을 꾹 누르는 것이다. 주로 일요일 오후에 하던 빌보드차트 방송이었던 것 같은데, 완성되면 뭐라고 테이프 바깥에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팝송모음집 정도였을까. 요즘 유행하는 playlist 플리인 셈이다. 이젠 시간을 기다리고 애쓰지 않아도 손 안에서 모든 걸 단박에 알아내어 불러올 수 있다. 누군가는 꿈꿀시간조차 사라진 시대라고 아쉬워했지만, 개인의 관심사와 취향은 그래서 쉽게 날로 날로 부푼다. 느닷없이 찾아와 준 노래들로 인해 별 노력 없이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플레이리스트의 세계이다. 몰입이 필요할 때, 몰입을 하고 싶을 때 음악만큼 좋은 도구가 없어 이것저것 듣다가 좋은 곡을 발견하기도 한다. 풍요 속에 빈곤처럼 쉽게 얻을 수 있어 듣고 또 듣게 되는 플리가 오히려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꼭 내가 선곡한 것처럼 냇가에서 줍게 되는 조약돌처럼 빛나는 것은 있게 마련이다.
제목이 다가왔던 <한여름의 오슬로 여행>. 이 플리 대부분은 노르웨이의 kings of convenience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남성 듀오의 곡들이다. 늦여름 밤산책용으로 귀에 꽂았는데 발걸음이 슬슬 가벼워지며 선선한 가을밤이 다가왔다. 가려고 했던 방향이 아니라 계단을 올라 불빛이 반짝이는 거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금요일밤 조그만 읍소재지에 흐르던 밤의 열기 같은 것에 휩쓸려 구경꾼처럼 어슬렁거린다. 너른 자갈마당이 시끌한 호프집을 지나 불 꺼진 옷가게 쇼윈도 마네킹들과 인사한다. 익숙한 거리의 낯선 분위기에 이끌려 밤거리를 혼자 걷게 해 준 노래들. 여름밤을 걸어 드디어 가을 속으로 들어왔고, 마침내 어둠이 빨라지고 단풍보다 자전거 바퀴에 카랑카랑 낙엽소리만이 울리는 외진 길에서도 여전히 이 플리를 재생하고 있다.
플리 중에 가을과 어울리는 <homesick>이라는 노래를 소개하려 한다. 가사는 예상과 달리 현실에 짓눌려 꿈을 잃어가는 이의 소리였다. 카운터 아래 상자들을 뒤져 그리워할 곳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찾을 가능성을 기대하는 이. 아, 그 시절 테이프가 여기도 있었군. 향수병은커녕 고향마저 잊어버린 현실이라니.
청명한 통기타 소리에 잔잔한 두 사람의 보컬이 스미듯 조화롭다. 사람 목소리도 악기 소리라는 말에 동의가 된다. 편안하고 서정적이다. 오래된 그룹 사이먼과 가펑클이 연상되기도 하던데, 실제로 이 선배들에 영향을 받았다는 글귀를 본 적 있다. 요즘은 세상도 세대도 혼재하는 느낌이다. 친구딸과 동등한 블로거로서 댓글을 주고받으며, 다른 공간에서 본 같은 유튜브 영상으로 우연히 아들과 어떤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 그룹이 무려 20년이나 넘었다는데 처음에는 놀랐지만, 어쩌면 20년은 수치에 불과해 음악으로 생각하면 그전에 많은 세월이 있었고 앞으로도 온갖 방식으로 전해지고 이어질 것이다. 2001년 첫 앨범 제목이 'quiet is the new loud', 이들 노래를 들어보면 마치 음악 정체성으로 다가온다. 올봄 한국에도 공연을 왔다간 나만 몰랐던 사람들.
https://youtu.be/uUn-R9pxGAs?si=b5lFUJs2ils3RQZi
일 년에 한 번씩 올리는 매거진 글인데도 돌아오는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네 번째 음악 이야기, 사 년째 브런치 글을 쓰고 있네요. 종종 일어나는 생각, 언제쯤 쓰게 되지 않을까, 는 계속 쓰고 싶다는 다른 표현이지 싶습니다. 아마추어 글쟁이는 생활이 글이라는 마음으로 모니터 앞에서 언제나 힘을 빼려 하지만 점점 쉽지 않군요. 이 매거진이 있어 내년을 기약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일 년에 딱 한번 여기만 올리는 것도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요. 사이사이를 채우는 날들을 꿈꿉니다. 내년에 또 여기서 음악으로 인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