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 발전은 세계관의 변화이자 인류의 위상이 점점 떨어지는 일이다. 또 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일이었다. 지동설, 진화론, 양자역학 등이 그랬는데... 이 책에서는 생소한 분기학이 등장하며 자연의 질서를 세우는 분류학에 금이 간다. 조류, 포유류, 양서류는 존재하지만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물에 있는 여러 물고기들을 어류라고 부르는 게 더 이상 맞지 않는다고 그들이 물에서 사라질 것도 아니며 좋아하는 가자미를 먹을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러면 물에 사는 물고기들을 어류라는 이름으로 몰아넣은 게 잘못됐다는 것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저자 룰루 밀러의 난픽션 드라마 같은 자전적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건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문제이며 개인의 삶에 관한 문제였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세상의 질서가 또 한 번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에 가벼운 전율이 인다.
이 세계 안에 있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저자는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과학 전문 기자다. 일곱 살 무렵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아버지에게 묻는 조숙한 아이였다. 아무 의미 없어!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말하는 아버지. 그럼에도 생화학자인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인생의 활력이 되어 마음껏 거침없이 대담하게 사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이런 아버지를 롤모델 삼아 자신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행복해지려 노력했으나 맞지 않은 옷이었다. 자살을 실행할 정도로 가족, 또래 문제가 청소년기를 잠식했으며, 남다른 성적취향은 성인의 삶을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우울과 자살충동이 지배하던 혼돈의 나날들, 그러다 문득 한 사람의 인생을 상기하며 구원의 동아줄처럼 매달리기 시작한다.
그 사람은 어류 분류학계 독보적인 존재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평생 수집한 어류 표본들이 난데없는 지진으로 박살이 난 처참한 현장, 어쩌면 모든 것은 실패라는 메시지 앞에서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재건 행동을 한 사람이었다. 바늘을 가져오게 해 널브러진 물고기한테 찾은 이름표를 살갗에 꿰매기 시작한 것이다. 룰루 밀러가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는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했지만 절망의 끝에 서보니 의도나 결과를 떠나 그 순간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그의 정신력, 의지의 원동력이 궁금해졌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 말이다
이때부터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관한 모든 텍스트들을 찾아보며 집요하게 그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스탠퍼드 초대 총장까지 역임한 이 분, 그의 인생이 예상대로 룰루 밀러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을까. 놀랍게도 반전의 인물이었다. 명성과 명망 뒤에 가려진 그의 참모습은 자신과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 강해 이성도 도덕도 무시하는, 권력유지를 위해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우생학, 사람을 우등과 열등으로 나누어 열등한자는 싹 쓸어 없애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과학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반전평화주의자? 이 또한 우등하다고 생각한 그 당시 군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이었지 인류의 평화와는 무관했다. 이 모든 것이 인류를 위함이라는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을 죽을 때까지 고수한다.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몰두하고 관심을 기울이던 그 상냥했던 소년이, 어떻게 바로 그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들을 기꺼이 말살하려는 남자가 된 것일까?
저자는 원인으로 조던의 자연의 질서에 관한 믿음, 자연 속에 사다리가 내재해 있다는 믿음에 주목했다. 그것은 박테리아에서 시작해 인간에 이르는 자연의 사다리 개념으로 그의 스승 루이 아가시(스위스 출신 미국 박물학자, 1807~1873)가 심어준 것이다. 스승과 달리 진화론을 받아들였지만 그것만은 조던에게 믿음처럼 자리 잡아 인간이 사다리 꼭대기 자리를 고수하는 일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었다. 그는 인도하는 소명을 가졌으며 그래서 방해되는 모든 것은 제거해야 했다. 믿음을 경계해야 할 과학자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그럼 또 자연의 사다리는 왜 그토록 집착의 대상이 되었을까.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는 일은 그에게 겁에 질린 나약하고 무력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자신에게 영웅이었던 형의 이른 죽음, 주변 것들을 형상화하고 수집(지도 그리기, 별이름 정복, 꽃학명 알아내기 등)하는데 몰입했던 어린 시절을 인정받지 못한 불안과 강박.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는 일이었다. 계층구조를 놓아버리는 것은 삶의 회오리바람을 풀어놓은 일, 딱정벌레와 매와 박테리아와 상어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공중으로 날아올라 그의 주변, 그의 위에서 빙빙 돌게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질서가 자신을 있게 했다면 혼돈은 죽음이다. 그리고 자신이 혼돈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잘못된 신념은 그렇게 태어난다.
우생학이라는 사이비 과학을 만든 이는 어이없게도 다윈의 고종사촌 프랜시스 골턴이란 사람이다. 진화론이 담긴 <종의 기원>을 읽고는, 자연선택의 힘을 사람 사는 세상에 적용시키려 한 것이다. 인류의 지배자 인종을 선별 조작하면 되겠다는, 가난, 범죄, 문맹, 방탕 같은 것이 유전의 문제이기에 이런 사람집단은 말살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과학계 권위를 이용해 미국 내에 앞장서 이 이론을 들이고 퍼뜨린다.
여러 주에서 우생학적 강제 불임화를 합법화하고, 전국의 명망 있는 대학들은 우생학을 가르치고, 20세기 첫 다섯 대통령이 우생학을 찬양했다.
사람을 적격자와 부적격자로 나누고, 부적격자는 수용소에 몰아넣어 불임화 수술을 강제로 시키는 일이 현실화되었다. 저자가 찾아간 버지니아주 간질환자 및 정신박약자 수용소는 수천 명이 격리되고 감금되고 불임화 된 장소였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여성 애나와 메리의 이야기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과 다를 바 없다.
예전에 tv에서 본 우량아 선발대회, 이웃 아저씨가 길 가다 잡혀간 삼청교육대가 떠올랐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을 규격화시키는 일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났던 일이고 지금도 다른 모습으로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바다를 바라보는 이도 부적격자에 해당되었다니, 추운 날 강가에서 하릴없이 오리들이나 보고 있는, 생산적이지 않은 글 나부랭이나 쓰고 있는 나도 우생학 기준으로 보면 제거되어야 할 열등한 인간, 부적격자이다.
저자, 룰루밀러는 칠흑 같은 어둠에서 한줄기 빛으로 보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을 쫓아갔는데, 예상치 못한 그의 어두운 면이 장악했던 잘못된 과학의 실체를 발견하고는 경악한다. 더 나아가 분류학 분야를 더 공부하던 중, 생소한 분기학과 분기학자들을 알게 되었고 놀랍게도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물성으로서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은 게 아니라 조던 같은 분류학자들이 해온 분류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1980년대에 분류학자들도 깨달은 사실이며, 어느 분기학자는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실제 자연 세계가 우리가 설정한 범주대로 분류되는 건 아니라고 설법했으나 그 관념은 전혀 학계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의 근원에는 우리 인간의 직관은 정상의 자리에 머물기 위해 모든 것을 조작한다는 것이다. 여러 생물들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무시하고 인간은 한참 멀리 있다고, 그래서 누리는 편안함을 진실과 결코 바꾸려 하지 않았다.
철학적 개념인 민들레 법칙은 민들레는 잡초이면서 약초이기에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좋은 과학은 우리의 관념,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확실성과 질서로 가는 길이라 생각했지만 혼돈의 상태를 정직하게 밝혀내는 일이었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저자는 물고기를 포기하기로 한다. 누군가는 별을 포기하고 누군가는 신을 포기했 듯.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
저자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실존적 변화를 겪는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원해줄 수 없다는 깨달음, 스스로 만들어 몸부림쳤던 관념의 틀을 벗어던지고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라 원하는 인생을 살기로 한 것이다. she에서 he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사랑에 솔직해진 건 자기 해방이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 그곳에서 물고기와 하나가 되며 거짓된 질서가 난무하는 세상을 향해 도발적으로 나아가려 한다.
거기 그들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수없이 글로만 읽었던 존재들. 아직 내가 이름도 모르는 존재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들의 피부 아래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나와 훨씬 더 비슷한 내장기관이 있다는 것, 나와 똑같은 이온이 흐르고 있는 뇌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류가 아니라는 것. 은빛 존재들 한 떼가 나를 향해 몰려오더니 잘하면 잡을 수도 있는 기차처럼 내 아래쪽으로 빠른 속도로 몰려다녔다. 나는 그 은빛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들은 갈라지며 나를 자기들 안으로 받아주었다. 수백 마리의 은빛 영혼들이 나를 감쌌다.
연말연시를 이 책에 사로잡혀 꼼짝도 못 하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런 거대 담론으로 다가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매력적인 책에 놀라서 말이다. 난픽션임에도 소설 같은 구조, 흡인력 있는 아름답고 밀도 있는 (문학이 저리 가고 싶은) 문장, 밑줄 그은 문장이 그득이다. 과학이면서 철학이고 심리학인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세상을 상상이 아니라 정말로 보여주는 이야기, 놀랍다.
이 책으로 인해 스탠퍼드와 인디애나 대학에 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보잘것없는 존재들의 바람이 곳곳에서 불고 있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이 독특한 작가의 정체성을 다양성, 돌연변이로 긍정할 수 있지만 우생학 기준으로는 모난 돌, 부적격자로 처리해야 할 대상이다. 세상은 점점 공유할게 많아지고 혼돈이 점점 현실화되는 듯 혼란스럽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옛이야기에서 용이되지 못한 이무기가 여의주 2개를 버리자 용으로 승천한 것처럼.
*회색은 책 그대로 인용
*물고기는 존재하자 않는다/ 룰루 밀러 글, 정지인 역/ 곰출판,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