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바깥 활동이 줄어드는 겨울은 책을 읽기에 알맞다. 지나고 보니 돋보기를 쓰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그때가 얼마나 축복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축복이었던 그 시절엔 그냥 바쁘고 읽는 재미를 잘 몰랐다면 이젠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자주 피로해지는 눈은 천천히 쉬어가라 한다. 추워도 산책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생활에서 책 읽기를 멈출 수는 없다. 글쓰기처럼 거북이걸음 같았던 이번 겨울의 책 읽기, 그냥 보내기 아쉬워 메모처럼 정리해 본다.
* 스토너/ 존 윌리엄스
출간된 후 50년이나 지나 베스트셀러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설이다. 그리고 주인공 스토너의 삶처럼 잔잔하지만 특별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세속적인 잣대로 성공하고는 거리가 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 대학의 영문과 교수가 된 건 조금 비범하다고 할 수 있으려나.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평범은 같은 욕망을 갖는 것이라는 했다면 스토너는 전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욕망보다는 내면의 소리에 충실한 삶을 살다 간 어쩌면 성공한 인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도 사랑도 어떤 관계도 자기 마음으로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바보 같고 우유부단했으나 끝에는 왠지 그 모습이 친절하지 못한 삶으로부터 자신의 존엄을 시키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이야기를 작가는 섬세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속도감 있게 이끌어 몇 번 나누어 읽던 중간에 스토너를 계속 생각하게 되고 다음 장면이 궁금해질 정도였다. 마지막 죽음 장면을 그렇게 황홀하게 묘사한 소설을 지금껏 보지 못했다.
* 시와 산책/ 한정원
시와 산문의 중간쯤 되는 이 책이 나의 이번 겨울을 정의해 주었다. 시와 산책의 중간에 겨울이 있었다고 말이다. 겨울을 좋아한다는 시인과 처음으로 겨울을 좋아하게 된 나, 우리가 된 기분이었고, 차오르는 마음을 부족한 언어 때문에 표현할 길 없어 갑갑해하던 중 시인의 언어는 카타르시스가 되었다.
아무리 추워도 홀린 듯이 나갔던 그곳엔 푹푹 쌓인 눈, 꽁꽁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강물, 그 틈에 풍경이 된 겨울 철새들의 움직임과 소리가 있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인적이 드문 하얀 세상을 걸을 땐 한 편의 시가 어른거렸으나 나올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고, 선물처럼 이 책이 찾아왔다.
나는 홀린 듯 집을 나선다.
눈이 더 쌓였을 것 같은 길을 부러 골라, 머리카락과 뺨과 발목이 젖도록 걷고 또 걷는다. 나를 불러낸 것은 어떤 빛나는 얼굴이지만, 걷는 것은 오롯이 나다. 곁에서 걸음을 맞추어 걷던 얼굴이 지금의 설경 위에 거듭 나타나도록, 나는 기억의 환등기를 비출 뿐이다. 그러니 이 산책은 멈추고 싶지 않아 멈춰지지 않고, 나는 기쁘면서도 자꾸 울상이 되고 만다.
시인은 겨울을 겨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봄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회색빛 투성이다. 겨울이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 떠나듯 인생의 겨울, 고통도 그럴 것이다. 어설픈 위로는 닿지도 않고 흩어질 뿐이다.
*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제목처럼 낭만적인 책이 아니다. 철학자 김진영 선생이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쓴 글들 모음집이다. 암 선고를 받고 13개월, 죽음 전까지 짧은 기록 같은 글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생과 삶 그리고 지금의 찬란함, 의지가 철학자의 깊은 사색과 사유로 나타났다. 이 글 또한 시와 산문의 중간쯤 되는데, 한 편 한 편 읽어갈 때 심호흡이 저절로 된다. 선생에게 모든 것은 사랑이었다. 끝까지 생에 대한 사랑과 환희를 놓지 않았던 그분의 마지막 글귀에 먹먹해지지만 그것은 또 다른 삶의 의지로 돌아온다. 우리는 영원을 사는 것처럼 오늘도 살았고 내일도 살아갈 것이다. 고향이라 생각하고 살았던 타향에서 문득 귀향을 서두르는 날이 온다.
스토너를 읽고 이 책을 다시 보니 왠지 이 분이 스토너랑 닮은 부분이 있다. 재야의 철학자, 이제야 알게 된 김진영 선생을 기억하고 싶다.
자유란 무엇인가.
그건 몸과 함께 조용히 머무는 행복이다.
*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 조지 기싱
이 책의 저자는 조지 기싱(1857~ 1903)인데, 왜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이라 했을까. 수상록에 가깝지만 자전적 소설 느낌이 난다. 서문에 보면 기싱은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친구이며, 먼저 죽은 이 친구의 남겨진 글들을 자신이 정리하여 출판한 것처럼 되어있다. 하지만 낯선 영국의 소설가 조지 기싱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알아보면 헨리 라이크로프트는 기싱이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며 자신의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인이 남기고 간 뜻밖의 유산으로 남은 인생이 물심양면으로 여유로워진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모습은 살아생전 지독한 가난에 허덕였던 기싱이 이루지 못한 꿈이다. 그리고 가난에서 벗어나면 생계나 명성을 위한 책이 아닌 오로지 스스로 만족하는 책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한 인간으로서 말할 수 있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책은 기싱에게 그런 의미였던 것 같고, 놀랍게도 힘을 뺀 글은 그의 주종목인 소설보다 더 널리 알려져 우리에게 왔다.
네 계절로 나누어져 있어 계절 따라 읽기에 좋다. 무엇보다 정적인 삶을 좋아했던 오래전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건 가난했고, 책읽기를 좋아하고, 지금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가 산책이라 그럴 것이다. 그래서 쓸 수밖에 없는 마음과 시간들, 나는 죽을 때까지 읽을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릴 것이다.
겨울의 마음으로 겨울을 건너는 중이지만 따뜻한 봄날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느 해보다 겨울이 옴팡지게 들어온 일상에서 빈약한 세계가 지탱하는 생활을 견디게 하는 건 결국 또 편식같은 책읽기였다.
*회색은 책 문장을 그대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