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 길게 걸어보려 경의중앙선을 타고 원덕역으로 갔다. 자전거 타고도 가봤고 걸어서도 가본 곳이라 주변 지리를 좀 알고 있다. 원덕역에 내려 용문 가는 물소리길에 있는 삼성리 느티나무 군락지까지 걷고 싶었다. 고령의 느티나무 어르신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나고 계실까, 궁금하면 가본다. 웬걸, 역을 나오니 바람이 불고 꽤 추웠다. 그렇지, 벌써 봄길이 기다리고 있을 리 만무하지. 이틀 전 포근했던 산책길을 기대했었나 보다. 지난 수해로 엉망이 된 흑천길 보수공사를 아직도 하고 있어 큰 덤프트럭까지 나타나 흙먼지를 일으켰다. 말자, 동동카누 있는 데까지만 갔다가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여름이면 카누를 탈 수 있는 초록빛 흑천은 아직 얼어 있었으나 뚫린 사이로 냇물이 보 아래로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다. 물소리는 계절이 없다. 멀찍이 야생 오리 떼가 노닐고 있어 잠시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기차 시간이 남아 좀 추웠지만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어느 곳이든 회색빛이지만 혹시 성질 급한 봄기운은 없나 싶어 먹이 찾는 헝거리 울프처럼 기웃거려 본다. 그러다 원덕역 바로 앞 동네에서 진짜 봄을 발견했다! 봄은 꽃이라는 평범한 명제에 기대어 봄을 발견한 것이다. 여전히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에 무슨 꽃이 피어 있겠나? 어느 집 화분 꽃이 화사하게 눈길을 끌었을 뿐이다. 겨울이라고 방에 들인 제라늄 화분이 창밖을 내다보며 쪼르르 소담스레 피어있었다. 온도만 맞으면 사시사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제라늄 꽃이지만 마치 몹시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멈춘 발길을 옮기며 오해받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살짝 한 컷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도 여느 집 발코니를 장식하고 있는 흔하디 흔한 제라늄. 여기 시골마을에서는 레트로 감성을 풍기는 빨간 벽돌이랑 또 잘 어울린다. 그러고 보니 이 마을이 지난가을 해거름 녘에 걸었을 때도 좋았었다. 실없는 발걸음이 될 뻔했는데 아무개 씨 집 제라늄한테 환대를 받은 기분이다. 반대로 제라늄이 좋았을까. 겨울 동안 온실 속 화초가 되어 재미라곤 없었는데, 느닷없이 지나가던 땡땡이 봇짐같은 객이 반색하며 아는 체 해주어서 말이다. 어쩌다 꽃 찾는 줌마 행색이 되고 보니 지난 한겨울에 야생화를 발견한 날이 떠오른다. 남쪽 지리산 마을에는 겨울에 매화꽃이 피어 눈 속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걸 어느 방송에서 보았다만 여기는 강원도에 접한 동네다. 더군다나 이번처럼 추웠던 겨울에 야생화라니, 온실도 아니고 길가에서 발견했다면???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처럼 알고 보면 어처구니없고 쉽다.
정확히 지난 12월 29일, 또 느릿느릿 강변을 걷고 있었다. 그곳은 큰 도로에서 깊이 내려앉은 길이라 혹한에도 낮시간에는 바람도 없고 따뜻하다. 오른쪽엔 강, 왼편은 경사진 방벽인데 그곳에 파란 빛깔이 멀찍이서 일렁거리는 게 보인다. 오잉, 무채색 일색인 곳에 저것은 무엇인고? 수레국화가 만발했던 곳인데 아직도 살아있다고..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치기 위해 암벽을 올랐다는 노인처럼 낑낑대며 올라가 보았다. 맞았다, 수레국화. 놀랍게도 자연상태로 말라 고운 빛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수레국화. 파란색이 농축되어 코발트 색에 가까웠다. 한송이만 보고 달려갔는데 주변에 그런 드라이플라워들이 제법 있었다. 후덜 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부서지지 않게 조심하여 몇 송이 꺾어 왔다. 한겨울 야생화를 이렇게 만날수 있고 꺾을 수 있었다.
자주빛 바위 가에
암소를 끌던 손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헌화가-
바칠 님이 없는 이 몸은 빈병에 꽂아 창가에 두고는 눈으로 먹는 겨울 비타민으로 애용하고 있다. 색이 바래지않고 여전하다.
이상, 봄을 기다리는 이의 시시한 꽃타령이었습니다!
(1년 후)
원덕역 근처를 지나다가 그집 그 제라늄을 보고 친구를 만난듯 반가웠다.
이번엔 바깥에 나와 있더라.
1년 동안 많이도 피고지었을 꽃들!
여전했음.
남의 집 화분을 지날때마다 관찰하는 것도 사랑일까. 날으는 새를 눈으로 끝까지 쫓는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