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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Aug 12. 2023

자전거 타기 1년


균형 잡기

자전거 타기 첫 단추는 균형 잡기였다.

잠깐 섰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하는 걸음마 직전의 아기처럼 시작한다.

작년 여름에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었으니 운행 경력 겨우 1년. 몸치는 1년이나 되어서야 균형의 느낌이 확실히 왔다.

여전히 자전거에 올라 첫 바퀴를 구를 때까지 과정이 매끄럽지 못할 때가 가끔 있다. 매끄럽지 않아서 균형을 잡았을 때 몰려오는 안전감은 더 크다. 바퀴가 두 개밖에 없는 탈것의 손바닥만한 의자에 앉았는데, 너른 대나무 평상 위에 누운 것 같은 편안함이 온몸에 사르르 퍼질 때가 그 순간이다. 일단 구르면 멈추고 싶지 않은 이유다.

어쩌다 들어선 비탈길이나 의도한 커버길은 균형의 극치다. 저절로 몸이 살짝 기울어지며 유유히 지나갈 때 자전거와 나는 환상의 짝꿍 같다.

일상에서도 균형이 필요한 경우는 다반사다. 자전거 타기처럼 그 지점이 선명하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에어컨을 잠시 벗어나 뜨거운 햇볕 세례를 받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본다. 이렇게 더운 날 계속 시원한 상태로 머문다는 게 어째 균형이 깨지는 일 같다. 더운 공기가 훅 들이쳐도 달리고 있어 안심이고 마음에도 샛바람이 들어온다. 땀을 흘리고 나면 오히려 시원해진다는 것이 더위를 대하는 생체의 균형 잡기이려나.


길들

초보 시절엔 평지도 어려움 투성이었다.

균형을 겨우 잡고 걸음마 떼듯 길에 나섰을 때, 길 위 모든 이들은 장애물이다. 잘 가다가도 누군가가 가까워지면 긴장되고 급기야 비틀거리다 결국 내리게 된다. 길 중간을 걷는 이, 가로로 떼를 지어 가는 무리들, 이어폰을 낀 사람들이 요 주의 인물들이다. 특히 중, 장년 여성들의 주변 지각 능력은 확실히 떨어진다는 걸 느꼈다. 가족들이랑 산책을 나가면 종종 한쪽으로 나를 끌어당기던 아들의 행동이 떠올랐다.

다양한 탈것이 공존하는 거리에서 안전한 보행법은 한쪽으로 서서 걷기만 하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말이지만 자전거를 탄 입장이 되어보니, 그것이 얼마나 서로를 위한 소중한 배려인지 깨닫는다.


오르막은 나의 성정에 맞지 않는 길이다.

기를 쓰고 무언가를 하는 것에 젬병인 사람은 자전거 타기에도 다르지 않다. 기어를 올리면 오르막이 쉬워진다는 팁을 지속적으로 주는 옆지기가 있지만 실행하고픈 의지가 없다. 그럼에도 1년쯤 되니 급경사가 아닌  웬만한 길은 오를 수 있게 되었는데, 서서히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인생이 그렇듯 언제나 안전하고 알맞은 길만 선택하여 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원하지 않아도(원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다 들어선 오르막에서 꼬꾸라진 경험은 거의 공포에 가까워 다시는 오르막 근처에도 안 갈 것 같지만... 어쩌다 또 그런 상황을 맞닥드리고... 그때는 거의 필사적으로 기어라는 걸 바꾸어(털컥! 할 때 그 느낌도 무섭다) 기필코 언덕을 넘어가려 안간힘을 쓰게 된다. 웃기게도 “영차! 영차!”라는 소리까지 터져 나오던데, 영험이 있었는지 마침내 언덕길을 올라서고야 만다. 안도감은 잠깐이고 기를 쓴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 그 기분, 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무척 중요한 사람에게는.

길에는 언제나 오르막이 있게 마련이고 애써 오른 길이 기쁘지 않다면 내려 숨 고르기 하는 여유라도 부려야 하는데, 늘 오르막은 딜레마다.  되겠어?, 회의를 품으며 ‘안돼! 안돼!’ 거부도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두근거리는 마음 한켠에 페달에 힘을 주려는 내가 일렁인다.

점점 다리는 두꺼워지고 꺼이꺼이 오를 수 있는 오르막길이 조금씩 늘어난다.


내리막은 오직 브레이크에 의지하며 두려움을 마주하는 시간이지만 자전거 타기의 묘미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경사진 길에 들어서기 직전, 아래로 쳐다봤을 때 최고조에 달한다. 다행히 그 두려움은 얄팍하고 짧아 내리막길에 들어서서 바퀴가 구르기만 하면 눈 녹듯 사라진다. 중간쯤에 이르면 의아할 정도로 편안해지기까지 하는 건 자전거 타기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한번 내려가본 길은 이젠 무섭지 않다. 그래서 그 한 번이 매우 중요한데, 그 한 번이 정말 안 되는 공포의 내리막길도 있다. 가끔 상상한다. 바퀴가 아래로 구르기 시작했는데 브레이크가 안 먹혀, 속도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과연 어디에서 끝을 맺을지 오싹하지만 장비 착용을 소홀히 하는 내가 사실은 더 위험하다.


변화들

태어난 이후로 가장 두꺼운 몸을 가지게 되었다.

중년이 되도록 천천히 걷기, 스트레칭 외에 의지를 발휘해 본 운동이 없는 사람에게 자전거 타기는 몸에 일어난 쓰나미였다. 때론 장기까지 흔들리는 것 같고 다리는 계속 움직이고 속도감이 온몸을 스치고... 그러니 기운이 필요했고 배가 자주 고팠다. 누군가는 식욕이 떨어질 정도로 운동을 해야 다이어트가 된다고 하던데, 식욕이 늘 정도로만 운동을 하니 반대로 살이 붙었고, 운동으로 붙은 살은 찌는 게 아니라 몸이 두꺼워지는 느낌이었다. 결과로 평균 5년 이상 된 옷장 옷들을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허리 통증이 줄고, 서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으며, 더운 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도 그렇게 괴롭지 않게 된 건 환영할 일이다.


기분전환을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말이나 자동차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처럼 소박한 자전거도 충분했다. 마침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내일이면 잊을 작은 일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 시기에 자전거를 만나 어느 때보다 휙 타고 달릴 일이 많은지도 모른다. 참새떼들이 날아오르다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풍경 속을 거침없이 달리다 보면 내일이 아니라 당장 오늘, 일어났던 마음의 흙탕물이 가라앉을 태세다.


발견

자전거 타기도 글쓰기도 혼자서 하는 일이다. 혼자서 하는 일에는 언제나 '내'가 보인다. 글쓰기는 원래 그런 줄 알았지만 자전거를 타며 나를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물론 그것 또한 글로 펼치니 그렇게 된 것이지만, 1년 전에 처음 배우는 이야기를 쓸 때도 1년 동안 경험한 자전거 생활을 쓰려했던 이 글도 그렇다. 멀리서 보면 움직임이 거의 없어 보이는 미미한 어떤 사람이 자전거랑 엮여 줌으로 당겨진 느낌이랄까.

오롯이 운전자의 힘과 성향으로 굴러가는 아날로그 탈것 자전거(전기가 아닌 일반 자전거)는 운전자를 위한, 운전자에 의한, 운전자의 자전거였다. 알아버렸으니 앞으로 함께 할 일만 남았다. 세발자전거로 돌아가는 날까지. 호호할머니도 커다란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필요한 물건을 사서 싣고 집으로 돌아올수 있다.

어느 광고성 블로거에서 발견한 성인용 세발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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