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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Sep 17. 2023

그릇무덤에 갔다

취향을 건지는 곳

동묘앞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동묘벼룩시장이 시작된다.

쭉 걷다 보면 양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 몇 발짝 걸으면 왼편에 일명 ‘그릇무덤’이라는 데가 있다. 상호도 없고 그냥 가게 물건으로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번에는 못 찾았는데 이번에는 나타났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지나치기 알맞아 찾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듯 보이는 곳이다.


정말 그릇 무덤, 그릇 고물상 같았다. 오랫동안 방치된 듯 먼지와 흙으로 더러워지고 깨진 그릇이 그대로 있는 (이 가게의 컨셉?)… 조금 놀라웠다.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 이런 곳이 있었다. 좁은 통로를 걸으며 혹시나 닿아 깨질까 봐 매우 조심하며 몸을 사렸다.

처음에는 의심과 놀라움으로 기웃거렸다면 점점 한 개씩 눈에서 마음으로 들어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보랏빛 수레국화가 잔잔한 무늬로 내려앉은 커피잔을 들고 주인장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네 보았다. 비록 사지는 않았지만 그 잔은 나로 인해 빛을 보았다. 주인장이 부러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더라. 서로 빛이 되는 공간, 어둠 속에서 한 개 두 개 불이 켜지는 기분.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데서… 보물을 찾는 기분은 이런 것일까, 혹은 가을에 도토리를 줍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는 사람들의 행로일까.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길은 잃어도 되지만 지갑이 다 털릴 것 같은 위기감은 데려가달라 아우성치는 저 그릇들을 애써 뿌리쳐야만 했다. 옷을 고를 때 그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듯(요즘은 그린 이미지랑 실제 거울 속 모습이 많이 달라 썰렁하다) 마음에 드는 것들이 속속 드러날 때 그것들이 식탁이나 집의 어느 공간에 놓인 모습이 떠오른다. 아, 데려가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라 온 마음이 맑은 날 오일장처럼 떠들썩해진다. 그런 마음을 후려치고 가게 밖을 나오면 놀랍게도 세상은 고요하다. 거기도 시장인데 말이다. 있어서 좋지만 없어도 생활과 무관한, 취향이라는 사치가 들어간 물건을 향한 마음은 그렇게 물거품처럼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건졌다면... 그건 시간 낭비일뿐더러 어쩌면 살아가는 힘의 원천인 작으나 소중한 부분을 무시하는 것으로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소비를 합리화해본다.


행남 자기 초창기 흙장미 시리즈를 발견하고 기뻤다. 촌실촌실한 분위기가 매력으로 다가온 건 엄마의 오래된 찬장에서 가져온 작은 접시들 때문이다. 옛날 오일장에서 샀다는 접시들은 시골 아낙네가 화장한 모습처럼 매끄럽지 못한 바탕에 들장미(찔레꽃)가 조잡하게 그려져 있다. 비슷한 분위기의 작은 접시를 최근 동네 오일장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반갑던지! 이건 뒤집어보니 행남자기로 매화꽃 로고에 ‘golden apricot

(금박 살구?)’라는 모델명이 적혔던데… 흑장미 그림이다. 어느 것도 연결되지 않았지만, 브랜드여서인지 빈티지임에도 많이 깔끔했다. 이 흙장미 시리즈를 그릇무덤에서 또 찾은 것이다! 걀쭉하고 옴방하여 쓰임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타원형 접시는 촌스럽게 화려했다. 젊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장미 문양. 사장님 말로 1970년대에 나온 거라니 나와 같은 세대라는 우연까지,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큰 접시는 단종된 코렐 빈티지 접시다. 매우 단조롭다고 생각한 코렐도 알고 보니 다양한 디자인이 있었다. 단조로워 멋은 없지만 가볍고 실용적이라 좋아했는데, 은은하게 고운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제는 생산되지 않으나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빈티지 세계에서 말이다. 먼지가 부옇게 앉은 그릇무덤을 살살 헤치면 뜻밖의 무늬들을 만나게 되는 코렐의 반전, 그래도 미니멀한 걸 하나만 골라 보았다.


빈티지를 왜 좋아하게 되었나.

언젠가부터 새것보다 바랜 느낌이 좋았는데, 뒤늦게 의식주 생활에 취향이 생기고 보니 뭐든 지나온 세월 것들이 디자인, 재질에서 자연과 진심이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 느렸던 시대의 물건에는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이 깃든 소박한 품위가 있다. 헐렁함도 숨기지 않는다. 뭐든 빠르고 쉽고 정확한 요즘 세상이 잃어버린 걸 빈티지 물건에서 발견하는 기쁨은, 역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자주 썰렁함에 사로잡히는 사람에게 위로 같은 걸 준다.


또 <월든>의 이 대목은 물건에 새겨진 문양뿐 아니라 목욕탕에서 스쳐 지나가는 여인의 문신까지 유심히 보게 한다.

아무리 우리 눈에 익은 물건이라도 집 밖에 내놓으면 집 안에 있을 때와는 아주 색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바로 옆의 나뭇가지에는 새 한 마리가 앉아 있고, 보릿대국화는 탁자 밑에서 자라고 있고, 검은딸기의 넝쿨은 그 탁자의 다리를 휘감고 있다. 주위에는 솔방울과 밤송이 껍질들이 그리고 딸기 잎사귀들이 흩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러한 형상들이 탁자나 의자, 침대 같은 가구에 새겨진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경로에 의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즉 이 가구들이 한때는 그런 자연 속에 놓여 있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매거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던 책 <윤광준의 생활명품>에서 윤광준은 물건은 시간이 담겨야 아름다워진다, 손때 묻은 나의 물건들은 이력서처럼 또렷하다, 라고 했다. 여기서 '나의 물건'은 비록 가격이 결정하는 건 아니었지만(장수막걸리까지 있었으니), 취향을 누릴 수 있는 조건 중 경제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한 달 치 월급을 다 털어 넣을지언정, 월급이 이어져 분할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손때가 묻어도 아름다워질 수 있는 물건에 대한 생각도, 경제력도 없었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심리인지도 모르겠다. 남의 손때 묻은 물건이라도 발견한 취향이 들어있다면 기분이 좋다. 순진한 가격이라면 더 좋고.

그릇무덤을 기웃거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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