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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Dec 13. 2023

<작은책>을 읽는 일


유일하게 집으로 오는 정기 간행물이 있다. 5년째 구독하고 있는 월간 <작은책>이라는 잡지다. 이름처럼 크기도 작아 <샘터>나 <좋은생각> 같은 잡지를 떠올릴 수 있겠다.  <좋은생각>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밝고 따뜻한 이야기’라는 슬로건이 있다. <작은책> 표지에는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라는 살짝 뉘앙스가 다른 부제가 있고. 따뜻한 이야기,라는 공통적인 문구가 있으나 실린 글들의 성향은 무척 다르다. 한쪽이 정말 밝고 따뜻한, 고난이 있을지라도 다독이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극복한 이야기라면, 다른 쪽은 사실은 암울하고 해결되지 않는 일이 더 많은 현실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보이며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사람들 이야기다. 자타인정 좋은 생각류의 생각을 하고 글도 그러한 내가, 어쩌다 작은책을 구독하고 있을까.


지방에서 올라와 공부 모임을 찾고 있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부산에서 책으로 세상을 알아가던 때라 읽고쓰는 모임이 절실했다. 그러던 중 마포에 있는 <작은책> 글쓰기 모임을 알게 되었고, 집에서 꽤 멀었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합정역 근처, 파주로 가지 않은 출판사들이 더러 보이는 골목 끝 건물 꼭대기 옥탑방이 잡지사이자 모임 장소였다. 뜻밖의 장소 낯선 분위기였으나 모두 따뜻하게 맞아주어 매달 나가기로 결심했다. 나름 공을 들여 책을 읽고 글을 써갔다. 자기가 쓴 글을 읽고 나면 문장에 대한 첨삭 지도를 받고 회원들과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었다. 말로만 들은 합평이랑 비슷하려나.


문제는 내 글에 대한 사람들 반응이었다. 다른 글들과 달리 내가 읽고 나면 한동안 조용했다. 다들 할 말이 없는 듯 분위기가 싸늘했고 읽은 나는 겸연쩍었다. 한참만에 리더가 지적해 준 부분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름 의미를 두고 고른 단어나 문장을 꼭 지적했다. 은유, 비유, 묘사가 들어있는 깻낱같은 이야기는 공기나 뜬구름 같은지, 심지어 어떻게 거기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냐고 신기하다는 듯 지나가는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외국의 어느 척박한 환경에서 교육 봉사를 마치고 막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 모임에서는 현실적이고 직설적이어야만 살아있는 글이었다.


회를 거듭할수룩 기대하고 달려갔던 모임의 세계가 보이고 내가 보였다. 우린 서로 다른 움벨트를 살고 있었다. *움벨트는 동물이 경험하는 주변 생물 세계를 나타내기 위해 만든 생물학적 용어로 공유하는 경험이 아닌 각 동물이 하는 특별한 유기적 경험이라 했다. 벌과 개미가 들판을 공유하지만 겹치지 않는 세계를 살아 서로 다른 움벨트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좋은 글이란 비슷한 경험이 있으면 공감하는 것이고 삶의 결이 다르다면 간접경험이 되어 인식의 범위를 넓혀 줄 것이다. 아직 그렇지 않은 내 글이기에 조금 커볼까 싶어 공부 모임을 기웃거리지 않았겠나. 그러나 그곳은 글쓰기라는 도구로 어쩌면 연대를 도모하는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벌이었다면 개미가 되어야 하는. 표면적으로 요구하는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같이 밥을 먹고 옥탑방으로 돌아오면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낭만적인 사람들이었지만 난 늘 어느 가정에 잠시 방문한 중요하지 않은 손님 같은 기분이었다.


코로나가 오고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자연스럽게 모임에서 멀어졌고 단톡방에서도 나왔다. 다른 방식으로 진행이 되기도 다시 나오라는 연락도 받았지만 돌아가는 게 어째 민폐인 것 같아 잡지만 매달 받아보고 있다. 비록 현실인 모임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초심은 잡지 안에 있으니까. 습관적으로 편지함에서 꺼내와 까맣게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웬만하면 읽으려 한다. 다양한 노동자, 활동가들의 일터 이야기, 보통의 살아가는 이야기, 환경, 생태, 여성, 제도권을 벗어난 이들의 삶 등 대중매체에서 다루지 않는 불편하고 무거운 어떤 이들의 솔직한 삶의 소식이 담겨 있다. 다른 움벨트의 개미와 벌은 서로 관심이 없겠지만 사람 사이는 그럴 수 없다. 사람 세상은 지독히 선을 긋기도 하지만 사실은 연결되고야 마니까. 다른  벽 앞에서 두말없이 돌아서게 되는 개인주의자 작은 사람일지라도 벽너머 세상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알고는 있어야 될 것 같은 먼지만한 연대의식이라고 할까.


요즘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세상과 통하는 문을 하나씩 닫고 싶은 마음이 자주 올라와서 일지도 모른다. 그런 성향에 가까웠지만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나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래 혹은 더 나이 든 사람들 모습이기도 하여 심증은 있으나 궁금했다. 왜 나이가 들수록 관대해지고 확장되기보다 주변을 에워싸는 것일까.

마침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자유의지 편에서 해답 같은 걸 찾았다. 뇌의 존재 이유는 생존이 첫 번째였다. 생각하고 마음을 내는 건 덤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뇌는 지나치게 성능이 좋아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까지 발현이 되지만, 사실은 우리의 자아는 너무도 유약하여 끊임없이 흔들리며 시간의 흐름을 견딘다. 그런 불안정한 자아가 지닌 자유의지, 따라서 자아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때문에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다, 는 말 명쾌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말인가? 지금 극도의 호르몬 변화를 겪고 있고, 나의 생존에 유리한 건, 방향은, 안팎으로 고요해야만 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게 힘들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합리화가 되나. 그대로 뒀다가는 나밖에 모르는 안하무인이 될 것 같은데.

희망은 뇌는 학습하는 기계라 데이터도 자아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나이 들어도 경험, 정보 수집하는걸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조금 확보한 것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확보한 데이타가 주는 메시지는 그렇게 세상에 문을 닫고 혼자 편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생존과 타협하면 진정한 이기심의 다른 면은 이타심이라는 것, 내가 편하려면 사돈의 팔촌까지 편해야 된다는 말이다.

<작은책>은 매달 나를 세상 속으로 보낸다. 소설 같은 솔직한 여성의 목소리에 움찔하기도 경험하지 못한 노동 현장은 배회밖에 안 되지만.. 비슷한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이들의 이야기는 찌릿하게 데이터 하나가 확보되는 느낌이다. 단단한 자아는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는, 해당되기 어려운 나의 뇌에게 주는 영양제이다.

후기를 하나 써놓고 망설인다. 늘 후기에 목말라한다는데 기대어 세상과 접속하는 기분으로 혼자서 두근거리며 용기 같은 걸 내어 편집자에게 카톡을 보낸다.











* 민트색은 책 그대로 인용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돌베개

*떡갈나무 바라보기/ 주디스 콜, 하버트 콜/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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