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종이신문을 보는 이유는 주제가 있는 칼럼 연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찾아보지 않으면 폰 화면에는 절대 뜨지 않는 글들이다. 요즘 글쓰기 강좌를 듣고 있는 김남희 작가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구독하는 신문에 <김남희의 앉아서 하는 여행, 몸으로 읽는 책>이라는 제목으로 꽤 오랫동안 연재한 칼럼을 고대하며 정말 재밌게 읽었더랬다. 책이 없는 여행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느껴질 정도로 책과 어우러진 여행 이야기는 더없이 풍성했다. 추천한 책을 몇 권 읽고 가보지 못한 그곳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아마 책이 있는 여행이 나에겐 감히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 그렇게 열광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여행은 반이 감동이라면 반은 그 감동의 시간을 갖기 위한 인내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저질체력과 까탈스러움으로 음식을 잠자리를 움직임을 인내해야 한다. 즐겨야 할 것들을 인내한다면 여행은 뭐하러 가나...
그래도 마음은 항상 바깥으로 열려있어 어디든 새로운 곳에 가고 싶다. 그래서 여행기간을 별 탈 없이 보내는데 신경 쓰느라 컨디션 조절한답시고, 혹은 실제로 너무 피곤해서 책을 본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여행지 작은 책방에서 책을 사긴 하지만 집에 와서 본다.
저번 강의 내용이 역시나 책과 여행이었다. 작가님은 전자책도 준비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종이책을 무겁게 여러 권 준비해 간다고 했다. 숙제도 책과 관련된 여행이다. 어떡하나. 책을 준비해 가본 적이 없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직접 가서 읽진 않았지만 책이 떠오른 여행지는 어떨까. 그렇다면 작년 이맘때 어렵사리 갔다 온 독일 작은 도시들이 있지 않은가. 가는 곳마다 10년 넘게 몸담았던 어린이 문학동네의 책들이 줄줄이 꿰어졌는데. 그냥 놓치기 아까워 브런치 작가 입문 글로 그 여행기를 썼었다.
다시 들어가 보니 군더더기가 너무 많아 정리해 보았다. 좋은 글은 보편성으로 가장 개인적인 내 이야기를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거라 했는데, 아직 내 글은 개인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글쓰기는 결국 나를 떠나 나를 바라보는 연습이기에 꾸준히 하다 보면 보편성을 획득하려나.
(지난여름 여행기 중)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을 달려 스트라스부르에 왔다. 스트라스부르는 독일 남서부 접경 지역에 있는 프랑스 도시다. 지브리 애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 도시인 '콜마르'와 스트라스부르가 있는 이 지역을 알자스 지방이라 부른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린 알퐁스 도데의 단편 <별>, <마지막 수업>의 배경 또한 여기 알자스 지방이다. 인근에까지 왔으니 당연히 와보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 읽어도 별은 아름다웠고 마지막 수업은 슬펐다. 항상 접경, 경계 지점에는 스토리가 있지 않나. 전쟁 때마다 무려 다섯 번이나 점령국이 바뀐 비운의 도시, 2차 대전 이후 비로소 프랑스 땅으로 되었다 하니 <마지막 수업>이 탄생할만한 하다.
이 곳 사람들에게 나라를 물으며 그냥 '스트라스부르 사람'이라 한단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처 받은 그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이해가 된다.
구시가지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가기 위해 나섰다. 얼마 전 화재가 난 파리 노트르담 성당보다 건축학적으로 한수 위라고 하던데... 봐주는 게 이 도시에 대한 예의 이려나. 버스에서 내려 한적한 골목길 따라 건물들 사이 우뚝 솟아오른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며 걸으니 왠지 중세 거리에 와 있는 느낌이다.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 땡땡 종소리는 배경음악처럼 울린다. 곧 700년간 지었다는 건축물이 점잖고 엄숙한 모습을 드러냈다. 성당 규모에 압도되고 급 반전된 인파에 압도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갑자기 밀려오는 피로감.
벤치에서 좀 쉬면서 기념품 가게를 어슬렁거리다 본 마그네틱 냉장고 자석이 오히려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붕 위에 둥지를 튼 황새 모형이었는데 네덜란드 동화 < 지붕 위의 수레바퀴 >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황새가 사라진 마을 아이들과 어른들이 황새를 다시 데려오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가는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는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고 유럽은 황새가 지붕 위에 둥지를 트는 게 흔한 일인가 보다. 알고 보니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주기도, 황새에게 물린 사람은 임신한다는 속설이 전해질 정도로 친숙하고 행운을 상징하는 새였다. 유난히 황새가 많았던 알자스 지방도 한때는 <지붕 위의 수레바퀴 > 쇼라 마을처럼 황새가 사라질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관청과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돌본 결과 지금은 개체수가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황새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내기 위해 황새처럼 생각했던 것일까? 황새와 관련된 동화가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좀처럼 사지 않았던 냉장고 자석을 몇 개 샀다. 책을 함께 읽은 지인들에게 나눠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노트르담 성당은 겉에서만 보고, 대신 광장 앞 강을 운행하는 '바토라마'라는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일 강'을 따라 시티투어를 해준다.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으면 한국말 오디오 지원이 되었다! 편안하게 앉아 이어폰을 끼고 우리말로 설명을 들으니 스트라스부르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강 따라 둘러본 스트라스부르는 유럽만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도시이기도 했지만 유럽의 수도로 불리며 위치,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전쟁 때마다 주변국들의 쟁탈전이 벌어진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지역인 만큼 이젠 유럽 평의회, 유럽의회, 유럽 인권재판소가 들어서 평화를 도모하는 의미 있는 장소로 탈바꿈해 있었다.
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들에 왠지 고무되어 두리번거리며 열심히 이어폰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었는데 뜻밖에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토미 웅거러(1931~2019)! 그림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그림책계의 거장, 그 이름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독일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 스트라스부르가 고향이고 배가 지나가고 있는 저 건물이 토미 웅거르 미술관이란다. 1931년생이니 독일 사람이었던 때도 있었겠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작품 성향과 스트라스부르라의 역사가 마치 퍼즐 조각처럼 딱 맞아 끼워지는 느낌이다.
그림책 내용이 반전, 평화, 인권, 편견... 등 묵직한 소재를 주제로 삼았지만 굉장히 해학적이고 풍자적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사실 아이가 유아일 때는 읽어주기엔 선뜻 들어오지 않는 작가였다. 육아를 마치고 나만의 책 읽기로 토미 웅거러의 세계를 접했을 때는 달랐다. 표지 그림만 봐도 무시무시했던 <세 강도>가 얼마나 웃기고 따뜻하던지, 작가만의 유머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까막눈이 글자에 눈뜨는 기분이랄까.
그림책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유럽의 작가들은 묵직한 소재를 표현하는데 익숙하고 기발한 것 같다. 반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어떤 교육보다 전 세대가 공감하는 훌륭한 그림 책한 권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토미 웅거러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스트라스부르의 정체성을 누구보다 잘 표현해준 작가이기에. 난 지금 스트라스부르를 여행하고 있지 않은가!
다음날 박물관 도착!
야외 뜰에 세 강도 조형물이 금방 책에서 튀어나온 듯 각자 도구를 들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 한다. 1975년부터 스트라스부르에 기증해 온 작품들로 2007년에 개관했다는데, 그림책 작가로만 알고 있는 나에겐 낯선 작품들이 많았다. 만화, 광고 포스터,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그만의 기발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특히 더 놀라운 건 토미 웅거러가 '에로티즘'의 대가일 줄이야... 지하에는 따로 19금? 작품들만 전시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작가의 이런 면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찾아보니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낀 알자스 지방의 정체성이 순수함과 에로티시즘으로 그의 몸에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밑바탕이 되었다는 말도 있고, 스스로를 "파괴자"라 규정하고 "에로티즘"을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와 성의 메커니즘화를 더욱 신랄하게 비판하며 풍자했다는 말도 있었다. 어떤 정체성과 의도가 있든 간에 에로티즘 그림을 접해 본 적이 없는 아들과 난 웃음이 삐질삐질 나오는 해학 가득한 기발한 그림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프랑스와 독일 국기가 소재가 된 그림 앞에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이 느껴졌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편견과 선입견 앞에서 늘 파괴자였고 어린이의 순수함을 간직했던 그는 영원한 자유인이었다. 안타깝게도 올 봄에 다른 별로 가셨다니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웅거러 세계를 빠져나와 플릭스 버스를 타고 마지막 여정이 기다라고 있는 프라이부르크로 다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