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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Oct 18. 2024

만월에 대한 추체험

한승원 자서전 <산돌 키우기> 중, 필사


중천에 뜬 둥근달을 머리에 인 채 잠든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시오리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한 스물다섯 살의 어머니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갓난아기의 오른쪽 허벅다리 한가운데를 깊이 파먹어들어가는 알 수 없는 습진이 생겼으므로 어머니는 그 아기를 업고 병원엘 다녔던 것이다. 지금도 내 오른쪽 허벅다리 한가운데에 만월 모양의 흉터가 있다. 그걸 보면, 아기 업은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오며 머리에 이고 오곤 한 그 샛노란 달이 머리에 그려지고, 그때마다 내 몸안에 알 수 없는 빛과 바람이 일곤 한다.




늦은 가을의 어느 초저녁에, 뒷동산 밤나무 숲에서 작은 쇠갈퀴(김 긁는 데 사용하는 갈퀴)를 이용해, 가랑잎을 긁어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다섯 살 적의 일이라 기억한다. 등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누구인가가 있음을 느끼고 돌아보니, 황금색 쟁반 같은 달이 떠 있었다.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나목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나의 검은 그림자도 그들 가운데 섞이고 있었고, 알 수 없는 두런거림인가가 있었다. 그 무렵 아득하게 먼 집 쪽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산꼴짜기 숲에서 메아리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갈퀴와 가랑잎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집을 향해 걸었다. 달그림자들이 누워 있는 숲을 지나, 경사진 언덕을 미끄럼 타듯이 내려가자, 달빛을 온몸에 뒤집어쓴 사람들 한무리가 우리집 마당 가장자리 흙담에 기대서서, 나를 불러대고 있었다. 내가 "응?" 하고 대답을 하자, 두 여자가 달빛을 머리에 인 채 나를 향해 달려왔다. 어머니와 큰누님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 갈퀴나무를 많이도 긁었네!" 하고 오달져하면서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집으로 돌아오자 나를 에워싼 식구들 중 삼촌이 말했다. "도깨비가 업어 가면 어쩌려고 거기에 갔냐?" 그 말에, 내 속에 무엇인가를 주입하던 검은 숲 그림자들을 떠올렸다. 그 달그림자는 평생 동안 내 의식 속에서 알 수 없는 작용을 한다. 그것은 나를 문득 깨어나게 하는 알 수 없는 그림자 영상이다. p16~17

그림책<바구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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