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자서전 <산돌 키우기> 중, 필사 2
광주에 입성한 나는 기찻길 옆의, 대지 열한 평의 지붕 낮고 조그마한 시멘트 블록 움막집을 사 들어갔다. 마당이 없고, 방 두 칸, 부엌 한 칸뿐이었는데, 옆에 개울이 있고, 가끔 기차가 지나다녔다. 방 한 칸에는 동생들 셋이 살고, 다른 한 칸에는 나와 아내와 아들이 거처했다, 큰 아들이 세 살 되는 해(1970) 늦가을, 아내가 딸을 낳았다. 학교에 갔다가 돌아온 나는 한밤중에 태를 언덕처럼 높은 기차 철길 모퉁이에 묻었다. 이후 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리면 턔의 넋이 기차를 타고 전 지구를 날아다닐 거라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가장 부르기 쉽고,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도록 이름을 강江이라고 지었다. 성 '한'과 더불어 부르면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이 되도록.
아기는 얼굴이 예쁘장한데, 피부가 약간 가무잡잡했고 이국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마가 여느 아이와 다르게 내밀기 때문에 눈이 약간 들어가는 느낌이었고, 속눈썹이 유난히 길면서 위쪽으로 휘어진 듯싶기 때문에 눈동자가 하늘 호수처럼 깊고 그윽하고 맑아 보였다. 장인 장모가 그 딸을 '비바우'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내민 이마 밑에서 비를 그을 수 있다는 과장된 표현이었다. 장인어른은 '연구통硏究桶'인 그 이마 때문에 장차 아주 영리하고, 큰사람이 될 거라고, 행여 머리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잘 키우라고 했다.
모든 아이는 태어나면서 다 제 먹을 것 가지고 태어난다는 그 말이 맞는지 그 아이 태어난 다음 내 소설은 잘 써졌고, 작품도 잘 팔렸다. 청탁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줄곧 소설쓰기에 골몰하곤 했다. 내출혈 같은,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러한 소설쓰기라는 병을 나는 앓고 있었다.
*커버이미지/ 은하철도의 밤, 여유당, 오승민 그림,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