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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Feb 18. 2024

봄으로 가는 길


봄기운이 돋으면 쪽파를 먹기 시작한다.

쪽파 이야기를 하자면 새(new) 장이라는 오래된 음식이 떠오른다. 그러면 또 메주를 불러와야 한다. 엄마의 메주에는 두 가지 모양이 있는데, 직육면체에 가까운 큰 덩어리와 동글동글하게 빚은 작은 공 모양이 짚으로 엮어져 걸쳐진 장대에 주렁주렁 매달렸었다. 큰 것은 큰 항아리에 들어가는 간장용이고, 작은 것은 반찬용이었다는 걸 이제야 안다. (연결되지 않았던) 메주가 변한 발효 반찬으로 새장, 박장, 집장 등이 경상도 어느 집안에서 했던 것들이다. 요즘 막장, 쌈장이 곁들이는 음식이라면 저것들은 독립된 반찬이라는 게 조금 다르다. 적어놓고 보니 같은 운(韻)으로 끝나는 이음절 단어들이 새삼 재밌다.

이 중 새장이 요맘때 먹었던 음식으로 쪽파를 부른다. 작은 메주 덩어리에 물을 흥건하게 부어 뽀글뽀글 발효가 시작되면 그제야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짧은 기간에 완성되는 새장. 슴슴하고 구수한 감칠맛까지 났던 장물을 떠서 시원하게 국처럼 들이켰던 유년의 기억이 있다. 그 새장에 추위를 이겨낸 쪽파를 송송 썰어 뛰운 초록의 맛이란! 다가올 봄은 밥상에서 푸르게 먼저 피어났다.


메주를 만들지 않아 새장을 할 수 없는 나는, 미소된장국 위에 쪽파를 송송 썰어 올리기를 습관적으로 한다. 쪽파를 단으로 사면 파전, 파김치, 파를 듬뿍 넣은 계란부침으로 파 샌드위치 같은 걸 만든다. 올해 봄맞이 쪽파 한 단의 첫 음식은 파: 샌드위치였다. 파향이 그득한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면 봄이 성큼 다가오는 듯하다.



겨울에도 양지바른 곳에 피어있는 봄까치꽃이기에 첫 봄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겁 없이 꽃을 내밀든, 보이지 않는 뿌리가 열일하든, 알고 보면 갑자기 되는 건 없으니. 장갑을 벗고 폰을 들이대다가도 서글퍼 찍기를 멈추곤 했는데, 이젠 제법 모양새가 나왔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잘 들어오지 않는지 찍고 있는 등 뒤에서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몸을 낮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봄의 전령들, 봄은 그렇게 나지막하게 오고 있다.



정월대보름이면 제철에 뜯어서 말린 묵나물을 먹듯, 이맘때쯤 길 가다 묵향기를 만날 수 있다. 길에 쑥향이 실바람에 실려 거짓말처럼 반짝 스친다. 주변은 아직 잿빛인데, 두리번거리다 보면 쑥대밭이 있다. 쑥대밭은 어지러운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지만, 낱말 그대로 쑥이 무성하게 나 있는 거친 땅을 의미하기도 한다. 젖고 마르기를 무던히 반복했을 바싹한 쑥나무들이 어지러운 쑥대밭은 모습과 달리 묵향기의 보고였다. 볼품없는 마른 가지하나를 꺾어 코끝에 대어 본다. 진하디진한 쑥냄새 맞다. 땅 밑 뿌리는 어린 쑥을 올리기 위한 준비를 거의 마쳤을까. 늘 그곳에 있었건만 끝자락에라도 알아봐서 다행이다. 처음일 뻔했다.

발행후 다시 눈이 온 쑥대밭

길바닥에 떨어진 누군가의 장갑을 보면 겨울마다 잃어버린 내 장갑 같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장갑과 모자의 주인들은 벌써 이것들을 잊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남 잃어버린 장갑 사진을 찍으면서 몇 년 만에 나는 겨울을 통과하도록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두어 번 잃어버릴 뻔했지만 용케 찾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니 사진앱 속 장갑들처럼 얌전히 길 위에 앉아 있었다. 바삐 되돌아가도 끝내 나타나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사라진(질) 것들에 대한 믿음, 아쉬움… 이젠 보내야겠다. 장갑들을 지워야겠다.

주인 잃은 모자와 장갑들



*봄

   박용외


길가에 쑥, 냉이가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자라나 있다.

이제 막 태어나서

길가 한 자리에

딱 앉아 있다.

작은 웅덩이에

미나리도 조금씩 자란다.

아직 춥지만

그래도 봄이다.

어린싹 같은 어린이의 시다.








*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 상동 초등학교 어린이들 시 모음/ 보리 출판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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