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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Aug 02. 2024

여열의 시간

wham!과 bossasonic의 <club tropicana>

커버사진/ 이수지 그림책 <파도야 놀자>


장마가 끝나자 온 데서 매미가 울어댄다.

오전, 귀 기울인 나에게 찾아오기라도 한 듯 마루 방충망에 붙은 매미 한 마리. 정말 매미와 나 둘뿐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곧 아랫도리를 씰룩거리며 울기까지 하더니 또 곧 번지수를 잘못 찾은 듯 휑 날아갔다. 이 땅에서 함께한 세월만큼 여러 경로로 매미를 본 적은 있어도 바로 코앞에서 온전히 드러낸 몸으로 우는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매미의 은밀한 모습을 목격한 것 같아 잠시 넋을 잃었지만, 그건 환대에 가까웠다.

매미 소리와 뜻밖의 출현은 본격적인 한여름의 신호탄으로 보이나 이어지고 있는 아침산책은 이 계절을 좀 다르게 알려준다. 낮의 더위는 분명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데, 아침 공기의 온도(수치랑은 결이 다른)와 풀과 나무에서 전해지는 기운은 계절의 정점을 지나 살짝 내리막으로 돌아섰다.


학교 때 자연시간에 배운 하지가 왜 여름의 정점인지 이해가 안 갔었다. 낮이 가장 길고 태양도 가장 높고, 일사량도 가장 많다고? 모름지기 진짜 여름은 장마가 끝나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고 물놀이하던 방학 때, 7월 말에서 8월이지 않나. 어쩌면 생체활동이 정점이라 신체 활동이 활발했던 그 시절 감각은 계절을 그렇게 인식했던 것이다.

이제는 짧디 짧은 정점, 전성기 같은 시절의 무지와 위태로운 평화를 안다. 알면서도 모르고, 모르면서도 아는, 속보이는 평화들, 그나마 누릴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리고 점점 후폭풍, 여열 같은 것들이 약속하지 않았는데 다가와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

얼마나 폭발적이고 파괴적인데 위대할수도 있다는. 전성기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뿌리가 흔들리고 뽑힐 수도 있다는 것. 여열은 어떤가. 쌀이 밥이 되고 노릇하던 빵이 새까맣게 타고 딱딱하던 콩이 물러진다. 불조절 잘하여 밥이 잘 퍼지고 말랑한 콩조림이 되면 좋은 일이지만, 수제쨈 발라먹으려 굽던 빵이 화장실 갔다 온 사이 불을 껐는데도 타버렸다면 실망이다. 빵은 리필하면 되지만 인생에는 리필되지 않는 일이 참 많다.


어릴 때 진짜 여름이라고 생각했던 한더위는 지구가 하지 때 태양으로부터 양껏 받은 열의 후폭풍이자 여열인 셈이다. 그때의 청량함을 생각하면 열을 받는다고 쉽게 데워지는 게 아니었고, 그렇다고 청량함이 영원할 거라 믿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구의 일처럼 사람 일에도 후폭풍이나 여열의 시간은 당연한 과정이다. 사실은 그 시간을 위해 그렇게 모두들 아등바등 사는지도 모른다. 성공이나 희망, 꿈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원하지 않았던 후폭풍이 일어나더라도 이렇게저렇게 움직여 중심을 잡아보는 건 어떨지. 진화론에서 말하는 무수한 잔가지를 가지게 된 생명의 나무의 원동력은 변이, 변화가 이끄는 다양성이었다. 가던 길만 고수하고 한 번쯤 뒤돌아보거나 다양한 옆길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면 그 길은 고난의 길이요 절망의 길이다.

주변이든 내면이든 변화 앞에서 주눅 들지 말고 살펴가며 나아가 본다. 아닌 건 말고, 어쩌면 전성기인지도 모르고 지나간 그때보다 더한 걸 발견할지도 모른다. 모든 건 여열의 시간에 이루어졌다.


난 80년대 청소년 시절 그 당시 아이돌, 영국의 듀오 wham!의 빠순이였다. 얼마 전까지 그들의 노래를 즐겨 들었는데, 당근 유튭을 통해.

유튜브시대가 열리면서 그들의 영상을 발견하며 얼마나 경악했던가! 범생이 여고생이 야자를 째며 달려갔던 뮤직비디오쇼를 넘고도 넘는 거대한 영상의 세계. 잊고 있었던 풋풋했던 젊음을 다시 만난 듯, 가슴 깊은 곳에서 몰려오는 무언가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이 어색했다.

몰아보기를 하듯 wham!에서 조지마이클로 거듭난 그의 음악세계에 한동안 다시 빠졌다. 미성에서 낮아지고 거칠어진 그의 목소리에 적응이 될 때쯤 안타깝게도 나의 스타는 조금 이른 나이에 생을 달리하고 말았다. 보내지 않았지만 그는 떠났고, 마음에서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유튜브가 있어 오히려 쉬웠는지 모른다. 앨범만 간직한 추억이라면 계속 꿈꾸었을 것이다.


이 여름, 그들의 첫 번째 앨범에 들어있던 노래 <club Tropicana>가 생각난 건 나이에 맞지 않는 일이지만, 어쩌겠나.. 내가 처음부터 이 나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들은 원곡은 역시 이제 어울리지 않는 옷 같다. 들뜬 클럽의 분위기, 에너지틱한 리듬감이 부담스럽다. 마침 보사노바풍으로 커버(리메이크)한 버전을 발견하고 기뻤다. 요란하고 끈적한 리듬이 가볍고 청량한 리듬으로 변신했다. 미련 없이 갈아탄다. 마치 맞춘 옷처럼 인트로가 풀벌레 소리에서 시원한 파도 소리로 변한것도 마음에 든다. 가벼운 공기처럼 스며들어 이어폰의 느낌도 의지한 감각도 사라져 음악과 내가 하나가 된다. 나의 청춘을 미련 없이 보낸다. 무엇이든 어디든 가벼워지고 싶은 장년을 받아들인다.


매미 한마리에서 시작해 보사노바 음악까지 잇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여열의 시간이 가져다준 자유다.



원곡

https://youtu.be/suxFdT-6VBk?si=KYa-n9TCzt9WqykB



커버곡

https://youtu.be/htpotJI5dCY?si=vvBSKNGlQaZBmPz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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