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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Mar 11. 2020

이름을 부르는 아이


바지 바람이 셌던 아버지가 가르쳐 준 직업은 ‘선생님’ 뿐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한 선생님은 사대, 교대를 나와야 할 수 있는 정규직 학교 선생님이다. 스스로 알게 된 것도 몇 개 있었지만 그건 꿈, 희망 란에 적는 진짜 하늘의 별과 같은 꿈이었고 현실에서는 선생님만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기 싫었던 난 당연히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직업(직장)을 갖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삶이 그렇게 녹록지만 않으니 일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지 않는가! 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이 많아 과외선생님을 하게 되었고 결혼하고 생활이 어려울 때는 또 배운게 그거라 과외선생님, 공부방 선생님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들어서는 그런 일들이 너무 지겨워 부담이 좀 적은 책방 선생님을 했다. 학교 선생님을 마다하더니 더 잡다구리 한 선생님직을 전전한 셈이다.


이렇게 밖에서는 선생님, 또는 누구 엄마로 늘 불리다 보니 보통 결혼한 여성들처럼 이름을 들을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멀리있는 친언니도 한때는 서로 사는게 얼마나 바빴던지 메일로 안부를 물으며 끝에 이름을 썼더니 낯설다는 답장이 왔다. 그래도 요즘은 카톡도 있고 학부모 모임이 아니라 순수히 내 관심사 모임을 하니 그나마 이름을 좀 찾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언감생심 ‘정계영 선생님!’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생겼다. 그것도 이제 겨우 세돌 지난 꼬꼬마가 말이다....


 윤이는 몇 달 전,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찾다가 돌봄이 필요한 아이와 돌보기를 원하는 시터를 연결해 주는 앱을 통해 만난 아이다. 앱 상에서 윤이 프로필을 보고 먼저 지원했고 겨우 네 살인 윤이도 여러 시터 후보 중 나를 지목했다고 한다.  부모와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고 어린이집 근처 카페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벌써 머리가 히긋히긋한 부모는 늦게 아이를 낳아 처음으로 남한테 맡기는 게 불안한지 표정이 안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나 역시 어린아이 돌본 지가 하도 오래되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있긴 마찬가지였다. 이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네 살 꼬마는 폰에 있는 자기 동영상을 보며 저 또래 아이들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첫인상과 달리 흥이 많고 사진, 동영상 찍기를 좋아한단다. 갈색 피부와 검은자위가 많은 눈동자 때문에 표정이 어두워 보이기도, 짧은 커트머리 때문에 성이 모호하기도 했던 윤이를 이렇게 만났다.


공무원인 엄마를 대신해 어린이집에서 데려오고 퇴근할 때까지 놀아 주는 게 일명 ‘하원 선생님’인 내가 하는 일이다. 책 읽어 주고 장난감으로 놀기, 같이 밥 먹기가 주된 일이지만 놀이터도 데려가고 갑자기 똥이 누고 싶다 하면 기저귀를 채워주고 치워주기도 한다. 하루하루 만나 보니 윤이는 치마를 좋아하는 영락없는 여자아이였고 음치면서 춤과 노래(두어 번만 불러주면 가사를 외워 버린다)를 즐기는 은근 귀여운 아이였다.


또래에 비해 말이 빠른 윤이는 어린이집 선생님 이야기를 조잘조잘 자주 했는데, 꼭 이름을 넣어 누구누구 선생님이라 했다. 그러면  나를 ‘하원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으니 그럼 내 이름이 ‘하원’이 되는 건가???

나쁘진 않았지만, 얘기도 나눌 겸, “윤아, 선생님 이름은 하원이 아니라 정! 계! 영! 이야”

아이가 눈을 또록또록 굴리며 바라보더니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몇 번 웅얼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몇 번 발음을 고쳐주고, 또 그러는 내 모습이 겸연쩍어 아이를 보고 씩 웃고 말았다.


이후로 다시 이름을 물어 가르쳐 주긴 했지만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 한쪽에서  “ 정계영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라는 소리가 들려오지 뭔가!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한  미세한 소리 바람이 일어나는 듯, 어딘가의 세포가 깨어 나는 듯.... 저 조그만 아이가 내 이름을 부르다니, 이젠 저 아이한테 달려가 정성껏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 그래~ 뭐야?”

“이것 좀 보세요. 무당벌레...”

“와~ 진짜네. 윤이는 모르는 게 없네. 무당벌레도 알고 선생님 이름도 알고”

“아빠도 그랬어, 윤이는 모르는 게 없네 그랬어...”

그 날 이후 난 하원 선생님이 아니라 정계영 선생님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게 불렀다.


어느 식당에서 직원들에게 전부 이름표를 달게 했더니, 손님과 직원 간에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이런 건가 보다. 동등한 위치가 되어 서로 함부로 할 수 없는. 비록 상대가 네 살 아이지만 윤이는 더 이상 어른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보살피는 아이가 아니게 되었다. 조금 일찍 태어나 세상살이에 익숙한 내가 도와줄 뿐이다.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게을러질 수가 없다. 이 녀석 참 고단수?


의무감으로 집에 아이들을 숙제하듯이 키우고  어린아이를  다시 가까이서 보니 새로운 세계다.

많이 먹이고, 많이 읽어 주고, 빨리 재운 다고 영원히 놓쳐버린 세계...

시시때때로 오는 통증이 가르쳐준 몸 구석구석을 아이 몸에서도 발견한다. 고관절은 언제나 풀려있고 허리, 목... 움직이는데 먼지만한 불편함도 없어 보인다. 요가의 목표가 아이 몸으로 되돌리는 거라는데, 되돌아 갈 수 있을까? 몸과 마음은 톱니바퀴 처럼 서로 맞물려 있던데... 우린 아이 마음을 벌써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해가 짧아 빨리 찾아온 어스름 녘, 윤이를 옆에 두고 창밖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감이 섬찟하게 몰려오기도 한다. 꼭 그때의 기분처럼. 고물고물 한 아이가 둘이나 옆에서 놀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외롭던지... 그래도 엄마는 우울하면 안 되니까 기분 전환하려 놀이를 제안하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었다. 윤이에게도 그럴 때면 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는 조용해지고 이내 눈이 가물가물, “엄마는 언제 와?"울먹이며 이젠 아이가 슬퍼진다. 이원수 시에 붙인 노래, ‘어디만큼 오시나’를 열 손가락 꼽으며 부른다.

키폰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는 벌떡 일어나 현관문으로 달려간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아이 윤이 , 하루 세 시간만 함께 하니 내 주변을 맴도는 팔랑팔랑 나비 같다.

우리 관계는 가볍고 서로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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