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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Jun 22. 2020

 하지 축제midsommar

어제 6월 21일은 하지, 오늘도 긴 낮의 연장이다. 농사를 위해 해를 보며 만들어진 24절기를 농경 사회가 아닌 요즘은 잊고 잃어버리기 쉽다.

가을에 태어났지만 여름을 좋아했던 지난날. 지난날이라고 한건 지금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변한 건 지 여름이 변한 건 지... 공평하게도 둘 다 원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은 각별하게 다가온다


어쨌든 어제오늘은 낮 길이의 꼭대기, 여름의 중간(midsummer, midsommar스웨덴어), 하지 날이다. 사실 북반구에서 그렇게 높지 않은 위도에 사는 우리는 낮 길이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좀 더 북쪽에 가까운 북유럽은 여름의 의미가 우리와는 다르게 심각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길고 긴 겨울을 보내고, 아니 보내고 싶지만 봄이라고 알고 있는 달에도 불쑥 나타나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모진 겨울이 정말 사라지는 시기가 6월, 하지 무렵이다.

그럼 여름의 중간이 아니고 여름의 시작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또 어쨌든 이렇게 겨울이 길고 추운 나라들은 여름의 풍요로움이 시작되는 하지에 큰 축제를 벌인다.  머리에 풍요의 상징인 화관을 쓴 여성들이 '메이폴'이라는 꽃, 덩굴로 장식한 높은기둥을 중심으로 빙빙 돌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 풍습이 있다. 이 축제가 열리는 전날에, 젊은 여성이 7가지 종류의 꽃을 베개맡에 두고 혼자서 잠을 자면 미래의 남편이 꿈에 나온다는 속설도 있다 하니 이 날이 얼마나 그들에게 의미 있고 즐기는 전통인지 짐작이 간다.


특히 북유럽 국가 중 스웨덴에서 열리는 하지 축제는 세계 최대 규모라 한다. 북유럽 신화의 나라,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장엄하게 펼쳐 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나라, 가보진 않았지만 읽은 글들과 정교하게 매치된다. 작년 이맘때 나온 공포영화, 미드소마도 스웨덴 하지 축제가 배경이다. 공포는 보통 어둠과 연결되는데 대낮이 지속되는 밝음이 배경이라니... 보진 않았지만 축제가 주는 또 다른 상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언제까지나 남겨두고 싶은 세계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희극 중 하나인 한여름밤의 꿈도 하지 기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니 유럽인들에게 하지가 주는 매력이 '썸'한 것 같다. 겨울이 길어 신화가 많이 탄생했고 낮이 길어 또 이야기가 탄생한다. 그럼 인간이 생활하기에 지극히 만족스러운 봄과 가을은? 요즘은 기후 변화로 느낄락 말락 할 때 지나가고, 놀기 좋은데 창작이 일어날 시간이 있겠나! 그저 좋을 때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좋다.


하지에 축제를 한다는 걸 알게 된 건 몇 년 전, 하지 날 일어난 내 마음의 축제 때문이다. 일을 마치면 곧장 저녁을 위해 바삐 집으로 향해야 되는데 그날은 다른 일을 한 가지 더 보게 되었다. 그 일을 마쳤는데도 해가 중천이라 집으로 향하는 길을 뉘엿뉘엿 걸었다. 그렇게 덥지도 않으면서 일을 마친 후에도 남아있는 햇살은 왠지 마음을 살짝 들떠게 했다. 천천히 걸으며 궁금한 가게는 기웃거려도 보고 안가 본 골목을 위해 돌아가기도 하고... 어디 짧은 여행이라도 온 듯 아는 동네가 더 밝아졌다. 바람난 사람처럼 싸돌다 집에 들어가 시간을 보니(그때만 해도 폰에 노예가 안되었을 때) 벌써 8시! 아직도 어둠은 오지 않았고... 아~ 오늘이 하지? 달력을 보니 정말 하지 날이었다. 진짜  낮이 길구나... 한 번도 절기, 하지의 존재에 눈뜨지 않았던 날들! 그날 이후 눈을 떴다.


그날 밤 자기 전 '축제'라는 단어가 떠올라 조심스럽게 '하지 축제'라는 검색어를 넣어 보았다.

우와~ 다들 즐기고 있었네!


이후로 매년 식구들도 모르는 축제를 나 혼자 벌이고 있다.

마침 오늘 전국이 맑음이다.

일 마치고 좀처럼 물러가지 않을 밝음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사회적 거리를 두고 천천히 올 어둠을 기다리며 혼자 꼼지락거리기 좋은 날이다.

낮의 여유를 부려볼 수 있는 일 년 중 가장 시간이 많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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