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책을 보는데 옛날 흑백 영화를 보는 듯했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나고... 시간여행을 한 듯, 보지 못한 젊은 아버지를 만난 것 같기도 하다. 저자의 아버지가 1924년 생이고 내 아버지가 1928년생이니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 당신들의 인생이 특별하다고 자부하는 세대이다. 가장 노릇, 특히 책임감 강한 아버지가 되는 게 지상 최고의 과제였던 내 아버지는 임무 완수한당신의 삶이늘 기특해서 글로 남기고 싶어 하셨지만,인생 끝자락에 치매가 오는 바람에 그만흐지부지 인생극장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
저자 노명우
1966년 파주 기지촌에서 태어나 돈 되는 일(클럽, 다방)을 하는 부모님 덕택에 달러의 풍요로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국가가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미래와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의 차이를 어린 나이에 알아차리고 의문점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에게 성장은 그 의문점을 풀어가는 과정이라 했다. 미국 유학을 가서 박사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 꿈에 닿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으나 미국이 아닌 독일에서 박사가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학 이론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학문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사회학자의 길을 선택하고 개척한다. <세상 물정의 사회학>으로 유명하고 이 책 <인생극장>이제법 팔려 은평구에서 '니은 서점'이라는 동네책방을 열어 더 성큼 대중에게 다가가는 장을 만들었다. 주말에는 책방지기가 되어 사람들을 만나고 대중강연을 하는 건 물론이다. 저자의 지금 모습은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능력이 탁월했던 어머니에게 영향받은 것 같다.
자식이 쓴 부모 이야기 시대 이야기
저자의 아버지는 자서전에 대한 꿈도 없었는데 사회학자가 된 아들이 독특한 방식으로 대신 자서전을 써 준 격이다. 그것도 근현대사, 영화, 사회적 이슈들을 접목시켜 개인의 삶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사회로 확장시켜 근사? 하게 말이다.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평범함이 또 모티브가 되어 소설이 아닌 논픽션 책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로 유명한 영국 그림책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도 <에델과 어니스트>라는 그래픽 노블에서 부모님 이야기를 했고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창작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 입장에서 자신들의 삶이 소재가 된다는 건 기쁜 일일까...일까. 위 두 경우는 객관화시키고 객관화시킬 수 있었던 자식이 한 이야기라 부모는 최고의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도 부모도 되어 본 입장에서 사실 부러웠다.
다음 세대가 평가했을 때 호불호가 갈리고 새롭게 평가될 수도 있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 곁엔그들에게(특히 대통령인 경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중들이 있다. 누구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기에 급급했던 우리 부모님 세대, 안쓰럽고 안타까웠지만,그들을 출발점으로 속속들이 사회의 모습을 들추어 주니 이해되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요즘 세태(대통령도 갈아치운다!)랑 비교하면 정말 격세지감이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잠깐이라도 온다면 정말 부끄럽지 않을까.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했다.
우리는 인생극장의 배우들
역사책에 나오는 그 시대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그 시대를 보여주기 위해 저자가 참고한 문헌과 영상물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찾으면 또 찾아지는 것도 신기하고. 그중에서 1948년 영화 <독립 전야>라는 영화 대사가 나와있는데 인상적이었다.
"이 창고는 괴상한데요?" "이 곳은 창고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인생극장이죠. 마침 전등도 연극처럼 꺼지고." "그래요, 인생은 연극이에요. 연극이 아니래면 우리가 왜 하필 이런 데서 만나요?" "연극으로 알지 않는다면 이 괴로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답니까? 그런데 오늘 밤 우리는 인생극장의 연극배우인 동시에 구경꾼이기도 합니다."
어린이 책방에서 아이들과 연극을 해 본 경험이 있다. 희곡 각색도 해보고 무대에 서보기도 했는데 배우일 때 생각보다 부끄럽거나 떨리지 않았다. 행사 사회 볼 때는 그렇게 긴장되고 떨리더니 웬 조화일까. 가만 생각해보니 무대에서는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이 되는 것이니 오히려 편하고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각자 인생극장의 주연배우들이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 삶이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연극이 끝나면 또 다른 내가 기다리고 있고 연극하는 동안만 최선을 다하는 거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이건 연극이니까... 자유로운 성실함!
주연배우 역할을 충실히 하면 그게 내 인생이 된다.
내 아버지도 저자의 아버지도 인생극장의 막이 내렸다.
이 세상에서는 다시 공연되지 않는 인생극장!
우주 어딘가에서 또 다른 연극이 펼쳐지고 있을까?
미하일 엔데의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에서 처럼 애달프기도, 멋있기도, 슬프기도 하지만 또 우습기도 한 인간의 삶을, 천사들 앞에서 말이다.
부모의 인생에서 사회를 보고 미래를 제시한 사회학자
이 책은 장례식이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부모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라고 했다. 마지막 인사는 부모 세대를 알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할 수 있었다.
과거는 미래를 상상하는 터전이다. 회고의 끝에는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상상이 있어야 한다.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과거에 대한 할 말이 많아지고,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을 정도로 수다스러워진다. 노스탤지어는 사람을 우울함 속으로 데려간다. 과거를 추억하고 안타까워할수록 현실은 맘에 들지 않기 마련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영혼이 사로잡힌 사람은 미래라는 단어를 낯설어한다. 부모가 살아왔던 생애를 기록해 나가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미래가 떠올랐다. 과거는 미래를 보기 위한 연습이다. 과거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고아가 되어도 서럽지 않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종결되어야만 한다. 기억의 정확한 시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