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투트가르트 언덕배기 게스트하우스에서 잠만 자고 바로 프라이부르크행 버스를 탔다.
아들이 한 달 공부할 곳이고 이번 여행의 계기가 된 지역이기도 하다.
친환경 도시라는 타이틀에 매료되어 처음에는 프라이부르크에서만 머물려했는데 어쩌다 한 곳씩 추가되어 이런 일정이 되어 버렸다. 독일 땅 밟은 지 5일 만에 이제야 간다.
기차보다 싸서 버스를 탔는데 여기도 교통체증이 있는지 가는 길이 제법 밀린다.
차창 밖은 비닐하우스 몇 개만 있으면 꼭 한국 같을 정도로 익숙한 풍경이다.
고속도로도 우리랑 같은 분위기인데 휴게소는 없다.
들판에 옥수수, 밀, 해바라기를 많이 심어 놨구먼.
저 곡물들도 GMO일까?
프라이부르크 역 근처 버스정류소에 내렸다. 생각보다 역 근처 분위기는 뭔가 좀 썰렁하다.
친환경 도시라고 자전거가 눈에 많이 띄었다.
어딜 가나 그랬지만.
먼저 여기서 이틀 머물 에어비앤비 집을 가기 위해 트램을 탔다.
이번에 머무를 동네와 집은 어떤 곳일까?
여행지에서 유명 장소를 찾아가는 가는 것보다 머무를 집을 찾아가는 이 시간이 더 설렌다.
특히 이번 여행은 보조를 맞추어야 할 일행이 없어 맘대로 여행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마음은 역동적이나 몸이 역동적이지 못한 관계로 잠시 머무는 남의 나라에서도 집과 동네가 중요해져 버렸다.
하이델베르크를 위해 머문 네카하우젠 집은 내가 골랐고 여기는 '엄마 취향저격' 운운하며 아들이 골랐는데...
썰렁한 역 부근을 벗어나 황토색 흙탕물이 흐르는 냇가 다리를 건너니 완전 다른 분위기의 동네가 나왔다.
'Vauban' 글자가 보이고 무슨 큰 건물(가까이 서보니 호텔!)이 온통 넝쿨 식물로 정교하게 덮여 있다.
순간 프라이부르크의 명물 '보봉 마을'이 떠올랐다. 여기가 그럼 보봉 마을인가? 찾아보니 보봉 마을 맞았다!
vauban은 독일어 같은데 발음은 꼭 프랑스 말 같네.
그나마 이번 여행에서 갈 곳을 계획하고 정보를 좀 알아온 게 프라이부르크가 세계적인 친환경 도시가 된 배경에는 보봉 생태마을이란 곳이 있다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쉽게 와 버리다니.
자유여행의 필수인 꼼꼼하게 계획하고 정보 수집하는 걸 하지 않아서 남들에겐 별일 아닌 일이 내겐 자꾸 뜻밖의 상황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곰인 내가 구르는 재주는 이런 것인가ㅋㅋ.
숙소를 찾기 위해 트램길 안쪽으로 들어서니 온 동네가 왁자지껄 떠들썩하다.
아이들 노는 소리, 어른들 얘기 소리로 떠들썩한 동네 풍경을 본 게 얼마만인가!
1970년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난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아 학교 갈 때나 놀 때나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였다. TV도 모여서 봤고 특히 방학, 명절이 되면 객지에 나간 누구 집 손자, 손녀들까지 합세해 해질 무렵이면 아이들 노는 소리가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렸었다.
그나마 지금 20대인 우리 아이들 어릴 때만 해도 바깥에서 노는 풍경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공부를 위해서도, 신체 활동을 위해서도,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도 아이들이 학원을 가지 하릴없이 골목이나 놀이터에서 빈둥거리며 놀지 않는다.
유아들도 바깥 놀이터가 아니라 돈 주고 가는 실내놀이터가 일상이고. 어른들은 카페에 다 들어가 있고.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말한 '사라진 나라'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아무런 의도 없이 내 안에 있는 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린드그렌은 자신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사라진 나라라고 표현했다. 누구나 불행했던 행복했던 어린 시절, 사라진 나라가 있기 마련이다.
내 사라진 나라는 오늘 만난 보봉 마을의 모습과 닮았다.
그러고 보니 독일에 온 이후로 시시때때로 어린 시절의 공기, 냄새, 촉감 등이 떠오른 걸 보면 아날로그적 삶이 많이 남아 있는 이 곳 환경이 그동안 내 마음 어딘가에 박혀있던 자잘한 감각들을 깨우는 것 같다.
감각은 추억을 불러오고.
초록이 무성한 골목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결국 전화를 하니 톰 행커스 목소리를 닮은 아저씨가 골목으로 나왔다. 1층에는 '티미'라는 순하고 덩치 큰 개와 부엌, 정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고 우린 2층 방에 짐을 풀었다.
가방을 정리하다 버티칼을 걷고 창문 바깥을 보니 동네 아이들 모습이 여기서도 보인다. 열어 놓으니 여전히 시끄럽다. 침대에서 쉬다가 조용해서 일어나 보니 바깥이 제법 어두워져 있다.
생태마을의 아이들은 해 뜨면 나와 놀고 해지면 들어가나 보다.
태양계 행성인 지구 생명들의 순리가 지켜지는
동네에 온 것 같다.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아스트리드 린드그렌/논장/2013)
사라진 나라(아스트리드 린드그렌/풀빛/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