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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Aug 11. 2020

모르는 마을


아이는 과자가 먹고 싶었다. 엄마가 오일장에서 가끔 사 오긴 하지만  동네에 하나 있는 조그만 점방에서 직접 고르고 싶었다. 미닫이 문을 스르륵 열고 들어서면 껌, 사탕, 막걸리... 냄새가 마구 뒤섞인 시큼 달달한 향이 좋았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은 조그만 시골 동네에도 있었다. 문제는 그곳이 아이에게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법 걸었다. 한 시간을 걸어 다니는 학교에 비하면 물론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 신작로를 중심으로 아랫마을에 살았던 아이가  윗마을 초입에 있는 가게를 가자면 반드시 버스 정류소 역할을 했던 다리 옆을 지나야 했다. 여름이면 집체만 한 느티나무 그늘이 드리운 다리에는 담배를 뻐끔거리는 남자 어른들이 언제나 우르르 모여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을 힐끔거리고 알면 무조건 말을 걸었다. 부끄럼이 많았던 아이는 우시장 끌려가는 소만큼 그곳을 지나가는 게  두렵고 싫었다. 아주 가끔... 용기 내어 지나가자면 얼굴은 빨개지고 뒤통수는 따끔거리고 가슴엔 수십 개의 북들이 둥둥거리고 걸음은 빨라졌다.


아이에게 윗마을은 거기까지다. 다리가에서 그쪽을 보면 물이 제법 많은 시냇가를 바라보는 집들이 꽤 있어 또래 아이들이 골목에서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쪽으로 놀러 갈만한 친한 친구가 없었다. 공기놀이, 오재미 놀이, 고무줄놀이가 곡예사 수준인 윗마을 아이들은 왁자지껄 했고 기운이 세 보였다. 다리 근처 정미소 옆 담배 집에 언청이였던 친구가 딱 한 명 있었지만 그 친구는 아이 집에 놀러 왔지 아이가 윗마을에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간 도시에서 주말에 집으로 올 때도 버스에서 내리면 언제나 오른쪽 아랫마을로 쪼르르 내려갔다.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할 수 있게 된 정류소 남자 어른들은 점점 주름살이 늘어갔고 명수는 줄어갔다. 소녀는 또 점점 고향마을에서 먼 곳에 살게 되었다.


아이에서 이젠 중년이 된 나는 여전히 고향 마을, 아랫동네로 간다. 혼자 남은 늙은 엄마가 해를 벗 삼아 아직 살고 계시고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더 이상 데리고 살 수 없어 데려다 놨기 때문이다.  가끔 혼자 시골로 들어갈 때면  버스에서 내려 정류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느티나무도 과자 점방도 이젠 사라졌고 남자 어른들은 돌아가시거나 거동이 어려워 집에 머무르기 쉬울 것이다. 먼지 풀풀 날리던 신작로는 깔끔하게 포장되었고 가로수였던 키 큰 포플러 나무는 벚나무로 바뀐 지 오래다.

아랫마을로 내려가야 되는데 윗마을에 자꾸 눈길이 간다. 익숙하면서 낯선 곳이다. 다른 나라 , 다른 지방 골목을 걷고 집도 기웃거리면서  저곳은 이렇게 멀었을까.




비 사이로 집을 나서니 보청기를 낀 엄마가 묻는다. 어디 가네? 저기, 다릿가 윗동네 함 가 볼라고...


뭐???


윗마을로  발길이 정확히 향한다.

그 많던 아이들이 사라진 고요한 동네로.

밖에서 보이던 개울가 길 따라 천천히 걷는다. 장마로 물이 많이 불었다. 물 많은 개울이 부러웠던 일본 시골 마을 못지않다.

오른편으로 골목 가지들이 제법 여러 군데다. 우리 동네 이름은 '새동네' , 그러고 보니 도시로 치면 여기가 구시가지인 셈이다. 돌담이 아직 정갈하게 살아있다!

이런 낭만적인 골목도

중간중간 오래된 나무들이 말을 건다.

왜 이제야 왔냐고...

솟을대문이 있는 집도 있네. 까치발을 하고 목을 빼어 대문 안을 기웃거려보니 폐가 같기도... 기억 세포 하나가 살아나고 어느 집 이야기가 훅 스친다.


동네 끝자락쯤, 윗길로 올라가는 대밭을 만났다.


여기는??? 기시감이 든다. 등에 업힌 아이, 누군가를 따라 낑낑대며 올라가는 아이... 윗동네 친구가 있었던 언니들 따라온 곳일까? 대나무의 삭삭거림과 시원한 바람결이 깊은 곳에서 살아난다.


대나무길은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였다.

산 능선이 드리워진 구름이 내려앉은 동네로 가는.

외지인들이 들어와 자연의 호사를 누리는 색다른 곳이다.



내려가는 외길에서 낯선 어른 남자를 맞닥뜨렸다.

몇 번 힐끔거리며, 묻는다. 어디 가요?   ... 정류소 남자 어른들은 여전히 있구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 빠져 죽은 아이가 물귀신이 되어 누군가를 잡아당긴다는 공포의 저수지, 회색빛 저수지는 동양화 한 폭의 자태로 깨어져야 할 구슬을 깨 주었다. 평화와 고요를 그린다면 이렇지 않을까.












어디를 싸돌아다니다 오네?

윗마을 간다 했잖아...

뭐??? 그 뭐 볼 게 있다꼬!


볼게 많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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