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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Sep 22. 2020

산적의 딸 로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사라진 나라는 언제나 그곳에

동화 <산적의 딸 로냐>를 읽다 보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어린 시절과 어린이책 이야기가 담긴 책 <사라진 나라>도 덩달아 펼쳐진다. 사라진 나라는 그녀의 어린 시절을 은유적으로 표현 말이다. 누구나 불행했던 행복했던 사라진 나라,  어린 시절은 있게 마련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그렇게(멋지게) 만들었던 것은 두 가지, 즉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과 자유로움이었습니다.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된 느낌 속에 놀다가 죽지 않은 것이 순전히 기적일 정도로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았습니다.

누군가 내 어린 시절의 추억들에 대해 물으면 처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입니다. 자연은 내 모든 나날을 에워싸고 있었고 어른이 된 뒤에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내 삶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자연에는 우리가 상상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라진 나라 중)

동화는 아이들만 읽는 이야기일까. 아이들 수준에 맞는 동화란 과연 무엇일까. 특별한 의도를 갖고 쓰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 더불어 다른 아이들도 즐거우라고 글을 쓴다는 이 작가는 또 어린이책을 쓰고 싶은 작가들에게 이렇게 팁을 준다.

평범한 단어들로 특별한 사물들을 이야기하라.

아이들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과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부하거나 빈약하게 쓸 필요 없다.

아이들을 위해 우리 세계에서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한가에 대해 감동적인 책을 쓰고 싶으면 그것을 쓰는 것이 당신의 권리입니다.     

이처럼 린드그렌의 어린 시절 ‘사라진 나라’는 <산적의 딸 로냐> 이야기로 탄생한다.  

선 북유럽 자연을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풍성한 자연 묘사, 자연과 사람에게서 느끼는 섬세한 감정들을 표현한 아름다운 문장들,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어둠의 족속들과의 대결과 우정, 보호받은 자유로움은  환상적인 숲의 세계를 창조했다.


산적 마티스의 요새가 쩍 둘로 갈라질 정도로 심한 폭풍우가 치던 날, 마티스의 아내 로비스는 노래를 부르며 딸 냐를 낳는다. 심상치 않은 로냐의 탄생은 숲에 새로운 기운의 시작이었으니. 숲의 강자 마티스 일당의 상징인 거대한 요새가 갈라졌다는 건 상대적으로 약한, 마침 그 무렵 요새를 잃어버린 보르카 일당이 한쪽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눔은 결국 평화의 첫걸음이지 않은가. 그렇게 되기까지 로냐와 같은 날 태어난 보르카의 아들 비르크,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수 집안의 아이들에게 싹튼 우정과 사랑이 큰 역할을 한다. 마티스와 보르카도 어릴 때는 친구였다. 하지만 대대손손 원수의 역사가 있는 집안의 문화는 결국 두 사람을 원수로 만들었고... 그들의 아이들도 그렇게 될 뻔했지만 운명은 그렇게 야박하지 않았다.


늘 인간의 이웃(?)인 어둠의 족속들 중, 얼굴은 사람이지만 검은 독수리 형상을 한 위협적인 비트로 나와 원숭이 정도의 위험이 있는 회색 난쟁이들만 조심하면 숲은 로냐 에게 놀라움으로 가득 찬 야생의 거대한 놀이터다. 겁내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아빠 마티스의 말을 기억하며 점점 야생의 소녀로 변해가는 로냐. 하지만 태어나던 날 갈라져 생긴 지옥의 낭떠러지 앞에선 로냐도 긴장하게 되는데... 마침 낭떠러지 저편에 또래 남자아이가 다리를 흔들며 앉아 있지 않은가! 알고 보니 어른들로부터 수없이 들은 악당 보르카의 아들이다. 적개심을 품은 로냐와 달리 비르크는 한층 여유롭다. 병사들에게 살 곳을 빼앗겨 갈라진 마티스 요새 한편으로 이사 왔다는 그 녀석의 말에 로냐는 더욱 위기감에 사로 잡히고, 느닷없이 비르크가 지옥의 낭떠러지를 펄쩍 뛰어 로냐 쪽으로 넘어오게 된다. 순간 로냐도 생각만으로는 감히 할 수 없었던 맞은편 낭떠러지로 얼떨결에 건너뛰게 되는데, 이렇게 시작된 이들의 뜀뛰기 경쟁은 지칠 때까지 계속된다. 마치 둘 다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 같이. 상상해보라! 화면을 정지시킨다면 허공에서 등지고 서 있는 두 아이의 메마른 모습을. 절대로 한편에 같이 설 수 없었던 로냐와 비르크. 어른들 세계에 갇혀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변하고 성장한다. 유혹하는 요물의 노랫소리에 정신줄을 놓던 냐가 더 이상 유혹당하지 않고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비르크가 냐의 목숨을 구해주는 걸 계기로 둘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심지어 만남을 금지하는 어른들에 반항해 가출까지 서슴지 않으며,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두 집안을 화해시키고 만다. 단순히 두 집안의 화해를 넘어 로냐와 비르크는 어른이 되면 산적 짓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부모의 틀을 벗어나 본 아이들은 변화를 시도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말라깽이 페르’라는 늙은 산적이 남긴 유언은 아이들의 결심을 더 단단하게 해 다. 언젠가 목숨을 구해준 회색 난쟁이로부터 들은 은광이 있는 곳을 로냐에게 말해주고 떠났기 때문이다. 로냐와 비르크는 남의 물건을 빼앗지 않아도 되는 광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숲의 평화를 위해 대결보다는 늘 화합을 말했던 말라깽이 페르는 죽는 순간에도 몰상식한 사람이 되지않기 위해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는 어른이었다. 어둠의 족속들이라 불리는 룸프니스, 비트로나, 스쿰트롤, 회색 난쟁이들... 분명 같은 공간 다른 세계를 살고 있어 서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또 늘 거기에 있어 숲의 존재들은 모두 이웃임에 틀림없었다.


린드그렌 동화들은 찬란한 여름날이 슬픔이 되지만 그래서 아름답고 평화롭다.   삐삐롱스타킹도 기발하고 웃긴데 왠지 삐삐는 늘 쓸쓸해 보인다.

비르크는 어스름이 깔린 숲을 둘러보며 묘한 기분을 느꼈지만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가슴속 깊이 아픔과도 같은 그런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단지 여름날 저녁의 아름다움과 평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비르크는 깨닫지 못했다. p235

어린 시절 어스름녘 황량한 가을 들판에서 고개 넘어가는 버스 뒷모습이 남기고 간 막막함, 비르크처럼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또 로냐처럼 외로웠지만 누구를 그리워하진 않았다. 이미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꽉 둘러 싸인 느낌이었으니까.

 

많은 문학작품에서 시간여행의 무대가 된 숲은 눈앞에 펼쳐진 숨겨진 세계이다. 끊임없이 야생을 갈망하는 우리들은 어쩌면 로냐처럼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배우며 성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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