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자유여행을 하다보면 엄청난 선택을 해야 한다. 어디를 갈 것인가? 일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서 잘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 끝도 없는 선택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은 이런 선택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하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삐끼한테 붙잡혀 마음고생 하기도 하고, 사기꾼에 걸려 돈을 잃기도 한다. 강도 만나 생명을 잃거나 몸을 상하지 않은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행하며 읽고 있는 책(의식의 기원)에 흥미로운 실험이 나온다. 생쥐가 물이나 사료를 먹으러 가는 통로에 전기충격망을 설치한다. 먹거나 마시기 위해서는 전기충격이 온다. 생쥐가 먹을 것이냐 마실 것이냐의 선택의 순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이런 쥐들은 전부 위궤양에 걸린다. 생쥐에게 선택과 상관없이 아무리 전기충격을 가해도 위궤양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선택의 스트레스가 병을 만든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보통 사람들은 아드레날린이 곧 분해되어 몸에서 배출되지만 선천적으로 분해가 늦거나 어려운 사람들은 피속에 쌓이는 아드레날린으로 정신병까지 생긴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다.
자유여행이 엄청난 선택을 요구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팩키지 여행은 선택이 없는 대신 자유를 구속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아예 집을 떠나지 않는다. 왜 사서 고생이냐며...
여행을 좋은 사람과 동행하며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초행길을 자유여행하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은 일단 욕심을 버려야 한다. 많은 것을 보겠다는 욕심, 남들이 꼭 가야 한다는 곳을 빠트리지 않겠다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여행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들이 다 보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 붐벼서 짜증만 날 수 있다. 오히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야 여유와 경치를 우아하게 즐길 수 있다.
Atlas 산맥 중앙의 Amellago 란 마을에 왔다. 많은 Morocco 여행기에는 언급조차 없는 곳이다. 모든 여행객이 가는 Merzouga(Sahara 사막)를 벗어 나면서 사람은 많지 않고 경치는 좋으리라는 기대 속에 6시간 동안 택시를 4번이나 갈아 타는 수고와 비용을 들여 도착했다. 역시 주변 경치는 사진속 그대로 였다. 영어를 잘 못하는 주인 Ali 가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부킹닷컴의 평점 9.7과 주변 산속의 경치사진에 매료되어 Auberge Amellago 를 Sahara 사막을 떠나면서 예약했다.
Auberge 는 민박집, 펜션,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이다. 주인 Ali 의 깔끔함에 놀랐다. 어느 구석 하나 어지러진 곳이 없었다. 모든 공간의 채워짐이 우아함과 깔끔함 그 자체였다. 액자도 대칭으로 걸려 있고 화분도 대칭으로 놓여 있고 심지어 쿠션의 배치도 좌우대칭이다. 대칭의 아름다움이 Auberge 구석구석에서 발현하고 있다. 이런 산속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시설과 꾸밈이다. 화장실의 변기와 타일마감도 고급호텔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겨울이라 우리 둘 밖에 손님이 없다. 손님을 챙겨주는 자상함과 세심함도 우리를 경탄하게 했다. "아마 Ali 아내는 죽을 맛이겠다. 이런 결벽에 가까운 깔끔한 남편과 사느라..." 친구와 나는 낄낄거렸다. 우리의 아내들은 행복에 겨운거라고...ㅎㅎ
9개의 방이 있는 이층건물을 짓는데 8년이 걸렸단다. 돈이 모이면 짓고 또 좀 모이면 짓고 하다 보니... 완성된 Auberge 를 지난 4년동안 운영했는데 찾아온 한국인은 처음이란다.
이 말에 오늘의 숙소선택이 더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완벽한 민박집을 찾아온 최초의 한국인이란 것에...
일상이 진부하면 인생이 진부한 것이다.
누가 진부한 인생을 살고 싶겠는가? 정말 깔끔하고 우아한 Auberge 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