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an 22. 2017

시스템에 내재된 폭력성

기만은 인간의 의식과 함께 생겨났다.


300명 밖에 앉을 수 없는 장소에서 주일날 5부 예배나 드리는 어느 교회 목사님이 인터뷰를 했다. 자신은 큰 교회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교회가 커지면 시스템이 필요하다.

'시스템은 내재적인 폭력성이 있다.'

목사님은 그래서 교회를 키우고 싶지 않단다.

목사님이 얘기한 시스템은 조직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큰 교회가 되면 부목사와 전도사도 여러명 필요하고 사무직원도 필요하다. 교회의 모든 조직도 대대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일 못하는 부목사는 혼도 내야 하고 직원이 사고 못치게 결재절차도 수립해야 한다. 소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모든 조직은 내재된 폭력성을 갖고 있다. 폭력조직이 아니라도 모든 조직은 그 안에 상하관계와 경쟁관계를 포함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담임선생님과 학생은 일종의 상하관계이고, 학생들끼리는 친구사이기도 하지만 경쟁관계도 된다. 조직안에 있으려면 꼭 해야하는 것이 있고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도 있다. 조직을 위해 열심인 사람도 있고 조직에 적응이 안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유치원 유아원도 몇년씩 다니지만 예전엔 국민학교(지금 초등학교)가 조직다운 조직의 시작이었다.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아이들이 한반 친구라며 모인다.

학교가기가 싫은 것은 당연하다. 친구들이 다 착하고 친절할리 없으며 하루 종일 보고 있어야 하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못생기거나 심술딱지처럼 보인다면 학교가는 것이 좋을리 없다.

폭력적인 학생주임선생이나 체육선생 말고도 많은 선생이 폭력적이었다. 한반이 70명이나 되는 중학생들을 일순간에 침묵시키기 위해서는 그럴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 하기도 한다. 그런 학교를 왜 개근을 하며 다녀야 했던 것일까?

검정고시가 있는 줄 몰랐다.

왜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많았을까? 왜 학교 청소까지 하면서 다녀야 했을까? 별로 가르치는 것도 없으면서 모든 시간에 그렇게 정숙을 강압적으로 요구했을까?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학교는 기만을 가르친 것이 아닐까?

기만이란 웃으면서 대하는 사람을 증오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기만하는 능력이 있어야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고 자신의 가족들도 잘 보호할 수 있다면 우울해진다. 원시 인류는 이런 기만이 없었다고 한다. 가장 늦게 사라진 잉카문명시대에 도둑이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 이전의 인간의 의식이 없던 시대에도...

기만은 인간의 의식과 함께 생겨났다.

조직은 영웅을 만든다. 내가 다니던 학교라는 조직의 영웅은 공부 잘하는 학생이다. 어떻게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자아내는 영웅이란 그저 암기력이나 공간지각력이 좋은 머리일 뿐인데...

모든 사회도 조직이라 영웅을 원한다. 승진, 승급, 특진, 성과급 등으로 영웅을 구별하려고 혈안이다. 자연도태라는 이름으로 조직은 폭력을 휘두른다. 아무리 개인이 저항하려 해도 조직 앞에선 무력한 하나의 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조직은 소위 회식이란 것을 한다. 일을 매끄럽게 서로 잘하기기 위해 회식을 한다.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며 갈등을 해소하고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회식자리를 빠지면 안된다. 조직에 남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곧 조직이고 조직은 조직을 보호하고 발전시킨다는 명분으로 그 자체로 폭력성이 존재한다. 그 폭력에 당하는 개인들은 트라우마를 겪게된다.

Morocco 에서 보이는 Spain


매거진의 이전글 모로코에서의 터키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