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
육순, 칠순, 팔순은 우리 나이로 60세, 70세, 80세 생일이다. 58년생들은 올해 2017년의 생일이 육순이다. 환갑은 만 60세 생일이고 진갑은 만 61세 생일이다. 옛날에는 이 세번의 생일을 모두 특별하게 여겼다. 그래서 세번 잔치를 했다.
사람들은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평균수명이 짧던 예전에는 죽지 않고 한 해 더 산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유가 있으면 생일잔치를 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의 생일날은 차례상을 차린다. 이승이 아닌 저승에 망자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망자를 위한 생일잔치를 한 것이다. 생일 못지 않게 돌아가신 날도 기억한다. 돌아가신 날을 기일이라며 망자를 위한 제사상을 차린다. 소위 기일잔치를 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축하하고 추모하는 행위이다. 산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자기 자신도 잊지 말아 달라는 부탁인지도 모르겠다. 늙거나 사고로 죽을지언정 제발 잊지 말라는 마음이 이런 관습을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르겠다.
어릴 때는 생일을 기다린다. 부모로부터 생일상을 받기도 하고 친구들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한다. 일가 친척에게 선물대신 용돈을 받기도 하니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젊을 때도 생일을 기다린다. 친한 친구들과 생일잔치를 한다. 클럽 같은 곳에서 하기도 하고 근사한 음식점에서 하기도 하고 삼겹살과 소주를 푸짐하게 먹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생일날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예전보다 훨씬 빨리 돌아 오는 것 같고 또 한살 먹어 늙어진다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무런 잔치 없이 넘어가기도 한다.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오늘이 친구의 생일이다. 아침 먹고 우아하게 커피와 함께 담배를 피는 중에 문득 기억이 났다. 카톡으로 육순을 축하하고 내일 저녁에 소주 한잔하자고 문자를 보냈다. 생일을 기억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생일을 기억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만약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백화점, 은행, 증권회사, SNS 밖에 없다면 슬픈 일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남의 생일을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 부모, 가족, 친척 말고...
친구의 생일 다음 날 친구를 만났다. 내가 육순잔치 해준다며 저녁을 샀다. 내 육순잔치는 네가 해 달라며...
내 육순잔치를 하나 달아 놓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남의 마음에 무엇인가를 계속 달아야겠다. 나중에 따 먹을 것이 있다는 것에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아마도 저축을 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돈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저축하는 것이다. 열심히 내 마음을 저축해야겠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으니...
내 생일을 남이 기억해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백화점, 은행, 증권회사, SNS 가 기억하고 축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진정한 마음이 없다는 것을...
페북이나 밴드에서 친구의 생일을 열심히 알려준다. 축하메시지를 남기라고 은근히 강권한다. 많은 친구들이 축하메시지를 실제로 남긴다. 이런 메시지를 보게되면 나는 웬지 씁쓸하다. 기계인 컴퓨터 서버가 생일 축하노래를 선창한다. 인간들이 따라 노래를 부른다. 내가 너무 냉소적인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시니컬했다고 생각한다.
내 생일을 남이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는 두가지를 열심히 하면 된다. 우선 내 생일잔치를 내가 한다. 그리고 남의 생일잔치를 내가 해준다. 남들이 내 생일을 기억할 수 밖에 없다.
부지런히 잔치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