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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pr 05. 2017

연한 핑크빛 와이셔츠

봄이 왔다.

출근하기 위해 옷장의 셔츠를 고르다 연한 핑크빛의 와이셔츠를 골랐다. 내가 좋아하는 색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나서자 어제는 보지 못한 옆동 화단의 벚꽃이 눈에 들어온다. 연한 핑크빛이다.


드디어 봄이 왔다.

이즈음 봄의 전령사는 벚꽃이란다. 개나리나 진달래가 아니고... 벚꽃은 딱 일주일이다. 꽃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기 전 이삼일이 벚꽃의 절정이다. 사람들이 개나리나 진달래보다 벚꽃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연한 핑크빛이 개나리의 노란색이나 진달래의 분홍색보다 보기에 우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만개해 버리고 금새 떨어지는 벚꽃이 아쉽기 때문이다. 우아함과 아쉬움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이 꼭 일년동안 지속된다.

사람들은 봄을 기다린다. 나도 봄을 기다렸다. 젊은 시절 맞는 봄과 나이 들어 맞는 봄이 다른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봄을 몇 번이나 더 맞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번 더 꽃이 피기 시작하는 벚나무를 찬찬히 본다.

연로하신 아버지는 제대로 보지 못한다. 오른쪽 눈은 시력이 나오지 않고 그나마 왼쪽 눈은 시력이 0.2가 나온다. 나이 들어 오는 황반변성 때문이다. 꽃을 보지 못한다. 봄을 보지 못한다. 사는 것이 사는게 아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 이제는 인지기능 장애도 와서 아들과의 대화도 어렵다. 본인은 나이 들어 눈이 안보이게 될 줄 모르셨다. 본인이 이렇게 허리조차 펴지 못할 줄 모르셨다. 그래서 짜증이 나고 몸과 마음이 심히 불편하다.

점심식사 하러 가는 중에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냐고 운전하는 내게 물으신다. 내가 대꾸를 안하자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다며 본인의 생각(?)을 단정적으로 계속 풀어 놓는다. 듣다 듣다 내가 한마디 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것이 아버지와 무슨 상관인데..." 내가 괜한 짜증을 부렸다.

사람은 나이 들어가며 변한다. 겉 모습도 변하지만 정신도 온전치 못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잊고 산다.

젊을 때는 자기도 늙어 병드는 것을 외면하고 산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산다. 오늘 같은 날이 매일 매일 계속될듯이 산다.


영생하는 존재인양 산다. 신처럼...

환갑즈음 되면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매일 매일 깨달으며 살아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을 그 날처럼 살아야 한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벚꽃을 눈에 넣어야겠다.


작년의 진해 여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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