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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pr 22. 2017

오늘은 결혼하기 너무 좋은 날

마지막이다. 주례는...


오늘은 결혼하기 너무 좋은 날이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주례를 오늘 섰다.
이제는 절대 안할란다.
졸업하고도 잊지 않고 가끔 찾아오는 제자의 청을 뿌리치기 힘들어 가끔 선 주례가 벌써 여섯번째...

예전에는 결혼식에 주례가 꼭 있어야 되는줄 알았다. 주례를 구하지 못한 신랑신부는 예식장에 부탁하면 주례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돈주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신랑신부가 주례없이 결혼식을 잘하고 있다.

사실 주례가 할 일은 결혼서약을 신랑신부에게 받고 성혼선언을 하고 지루하지 않은 짧은 주례사를 하는 것이다. 주례없이 한다면 결혼서약은 둘이 서로에게 하고 성혼선언은 둘이 합창하면 된다. 주례사 같은 좋은 말씀은 혼주인 신랑아버지와 신부아버지가 하면 된다. 좋은 말씀은 사실 너무 많이 들었다. 들었다고 기억되는 것 아니고 그대로 실행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어수선한 이즈음의 결혼식장에서 좋은 말씀이 신랑신부나 하객들의 귀에 들릴까 싶다. 그래서 나는 인쇄한 주례사를 상장같은 성혼선언문 사이에 끼워두고 온다. 신혼여행 다녀온 신랑신부가 결혼식 때 받은 선물과 사진 등을 정리하다가 한번 다시 보라고...

신랑 아무개군과 신부 아무개양에게 딱 한마디만 당부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년봉이 높은 직장인 현대자동차에서 둘이 만나 결혼을 약속하였습니다.
쉽지 않은 인연입니다. 좋은 인연입니다.
아직은 서로 연인 같겠지만 결혼을 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연인 같은 사이가 변합니다.
그럴 경우 친구 같은 사이를 끝까지 유지하기 바랍니다.


남편을 친구같이 아내를 친구같이 대하기 바랍니다.

친구 사이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서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친구 사이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를 탓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투정하지 않는 사이가 친구 사이입니다.
항상 앞만 보고 가기도 힘든 세상입니다.


평생을 친구처럼 살기 바랍니다.

일주일이란 시간 중에서 가장 황금시간이 바로 토요일 지금 입니다.
이 귀한 시간에 이 결혼의 증인이 되고 축하해주기 위해 이 자리에 계신 하객 여러분들께 혼주를 대신하여 감사 드립니다.
하객 여러분들은 이 결혼의 증인인 동시에 이 결혼이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보호할 의무도 지신 것입니다.
이 젊은 한 쌍의 인생이 순탄하게 진행되도록 부모님 같은 마음으로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귀한 시간 내주신 하객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저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시간을 재보니 딱 2분이다. 여섯번의 주례사 중에서 가장 짧았다. 그래서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 2분을 만들기 위해 나는 몇일을 생각했다.

딱 한마디 무슨 말이 좋을까를...

어떤 주례가 "신랑 신부 내가 무슨 말 할지 알지?" 하고 딱 한마디 하고는 섹소폰을 불어 줬다고 한다. 나는 섹소폰을 못 불어 2분이나 얘기 했다.

친구처럼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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