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 부터는 예약없이 몸으로 부딪혀 보자...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자유를 찾아 나서는 것이지만, 사실은 익숙하고 편안한 것 모두 버리고 애매모호한 상황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것이다. 애매모호한 상황이 황당한 상황으로 돌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잠자리를 미리 예약하려는 본능이 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자 하는 것도 본능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안정적인 직업은 의사, 교수, 교사, 공무원, 공기업직원 같은 것이다. 경쟁이 극심할 수 밖에 없다.
혼자 다니는 자동차 여행이지만 다음 목적지를 정하고 부근 숙소를 미리 예약해야 마음이 편하고 안정된다. 노르웨이의 첫 기착지인 크리스티앙샌드를 떠나면서 다음 목적지인 쉐락볼튼이나 프레이케스톨렌 부근의 숙소를 예약했다. 리뷰도 엄청 좋은데 가격은 헐한 florli 4444 란 호스텔의 혼성 4인실 침대 하나를....
숙소의 중요 정보에서 페리를 이용해야 접근이 가능하단 것이 있었는데 짧은 구간의 페리가 자주 있으리라 나 혼자 생각했다. 예약은 이틀 전에 하고 떠나기 전날 혹시나 하며 호스텔의 홈피를 열어보니... 아뿔싸. 페리는 하루에 두번이고 차까지 옮기려면 편도에 15만원이다. 침대 하나를 3만원에 예약했는데 배보다 배꼽이 훨씬 커져버렸다.
Florli 는 Lyse fyord 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Lyse fyord 는 넓적바위 프레이케스톨렌과 달걀바위 쉐락볼튼을 갖고 있어 가장 유명한 fyord 이다. 옛날 수력발전소 주변에 형성된 아주 작은 마을이 florli 이다. 호스텔은 수력발전소 건물을 식당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부근 여러채의 집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루에 페리가 두번 들어오는 섬 아닌 섬 florli 에 갇히고 말았다. 안정된 잠자리를 어설프게 찾다가... 쉐락볼튼이나 프레이케스톨렌으로의 트레킹은 당일은 무리고 텐트를 갖고 1박2일로 해야 한다하여 포기했다. 온종일 통창으로 아름다운 Lyse fyord 를 보고 있다. 시시각각 날씨와 시간이 변하여 지겹지는 않다.
트레킹하려고 온 사람들이 많다. Fyord 에서 카약을 타거나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1박2일로 거하게 생일파티를 하는 사람들도 속속 모여든다. 어제는 그 중의 한 가족과 같이 잤다. 요트나 레저보트를 타고 온 우아한 사람들도 있다. 오늘은 트레킹 복장의 중년 노르웨이 아줌마 일당이 시끄럽게 떠들며 노래까지 합창한다.
비틀즈의 'Yesterday'를...
어제 들어 올 때는 그렇게 좋던 날씨가 오늘은 오후 2시까지 계속 비가 내렸다. 이런 비속에 텐트를 치고 걷는다면 끔찍할 것이다. 어제는 다섯시간 운전하고 렌터카는 선착장에 두고(돈 아끼려고) 2박치 짐만 들고 페리를 탔다. 급하게 타느라 제대로 짐을 챙기지 못했다. 비는 오는데 방수자켓, 우산 모두 차에 있다. 비 그치기를 기다려 fyord 가 잘보이는 뒷산을 혼자 올랐다. 가파른 산을 쉬지않고 딱 한시간 올라 산등성이에 도착했다. 고도를 확인하니 400미터다. 이거면 됐다. 더 이상 가지 말자. 무릎 관절을 아껴야 한다. 이제는...
내일 새벽 첫 페리로 이 섬을 나가야겠다. 두고 온 렌터카가 너무 보고 싶다. 이제 거의 환경적응 했으니 내일부터는 예약없이 해봐야겠다. 그냥 몸으로 부딪혀 보아야겠다.
죽음을 예약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