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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28. 2017

관광은 역시 힘들다.

바이칼호, 알혼섬, 후지르, Cape Khoboy.


Khuzhir 바로 옆에 있는 Shaman rock 을 보러 많은 바이칼 관광객이 알혼섬을 찾는다. 길쭉한 바이칼호의 가운데에 길쭉한 알혼섬이 있다. 길쭉한 알혼섬 딱 가운데에 Khuzhir 가 있다. 이르쿠츠크 버스터미날에서 Khuzhir 까지는 거의 300 키로이다. 알혼섬으로 건너는 선착장까지 250 키로는 제법 잘 포장된 왕복2차선 도로이다. 15분 정도의 짧은 페리를 타고 알혼섬의 제일 남쪽으로 건넌다. 알혼섬에는 아직 포장도로가 없다. Khuzhir 까지의 40키로는 완전 비포장이다. 엄청난 모래먼지가 날린다. 섬 전체가 숲보다는 초원이고 섬의 가장자리에는 모래언덕이나 모래해변이 많다.

아침을 먹는데 Khuzhir 의 숙소 호스트 마리나가 구글번역기를 들이댄다. 내용인즉 알혼섬 북쪽을 둘러보는 excursion 을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11시 숙소출발이고 일인당 1100 루블이란다. 어제도 자전거 한시간 타고 banya(러시아식 사우나) 외에는 숙소에서 뒹굴었기에 오늘은 하겠다고 했다. 숙소 앞에 도착한 러시아 봉고차에 올랐다. 러시아 아줌마 다섯명이 타고 있었다. 근처의 다른 숙소에서 세명의 중국인(부부와 아들)을 태우고 Khuzhir 를 벗어나 알혼섬의 북쪽을 향했다. 봉고차에는 우리의 점심도 실려 있다. 운전은 아주 씩씩한 러시아 여인 빅토리아가 한다.

알혼섬의 제일 북쪽 끝이 Cape Khoboy 다. 바위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 살던 뷰라트족에게 신성한 기운이 느껴졌는지 곳곳에 매듭이 묶여진 나무와 기둥이 있다. 우리나라 성황당처럼... 형형색색의 매듭들이 바람에 펄럭인다. 심지어 우리말로 쓰여있는 매듭도 있다.

Cape Khoboy 까지는 Khuzhir 에서 직선거리로 39 키로이다. 그러나 구글맵에 길이 없다. 길 같지 않은 길을 러시아 사륜구동 봉고들이 신나게 달린다. 주로 초원인데 중간에 험한 산길도 있다.

이런 관광을 따라 나서면 좋은 경치들을 빨리 많이 볼 수 있지만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달리다 서면 내려서 사진 찍고, 또 달리다 서면 내려 사진 찍고를 반복해야 한다. 오전 11시에 시작한 관광이 오후 6시가 넘어서 끝났다. 길 아닌 길을 종일 달렸더니 온 몸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는 이 고행이 얼른 끝나기를 고대했다. 관광은 역시 힘들다.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섬으로 갈 때는 날도 좀 흐렸고 미니버스가 Ford Transit 이었다. 10명을 태우고 어찌나 달리는지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지루할 새가 없었다. 더욱이 처음 가는 미지의 길이니 약간은 긴장되고 불안하기도 했다. 알혼섬으로 가까이 갈수록 주변 경치도 신기하게 달라진다. 난생 처음 러시아에서 페리도 타고...

그러나 알혼섬을 떠나 올 때는 다르다. 이미 한번 지나가 본 길이다. 이 날은 우리나라 미니버스 25인승 카운티였다. 더욱이 운전사는 차를 아끼는 것인지 연료비를 아끼는 것인지 아주 얌전히 운전한다. 알혼섬 비포장 40키로를 들어갈 때는 40분 만에 달렸는데, 나올 때는 한시간 40분이나 걸렸다. 해는 점점 중천으로 뜨고 날은 유난히 더웠다. 에어콘도 없고, 창문도 열수 없게 밀폐된 미니버스에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점점 지쳐간다. 7시간이 넘게 걸렸다.

구글맵으로 열심히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 어디 있는지,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언제 도착할지를 계속 확인한다. 마치 열시간 넘는 장거리 항공이동에서 항공맵을 통하여 얼마나 날라왔고 얼마나 날라가야 하는지를 확인하듯이...

이 고통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지를 알면 덜 고통스럽다. 참을 수 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어디까지 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러면 오늘 하루가 너무나 소중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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