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쿠츠크의 마지막 밤
바이칼호 중심의 알혼섬을 떠난다. 바이칼호 주변 경치와는 색달라 많은 러시아인들과 단체 외국 관광객으로 붐비는 섬이다. 알혼섬에서 3일이나 잤다. 이층 방 앞에서 바이칼이 보이고 마리나가 해주는 러시아식 저녁이 좋았지만 화장실이 소위 푸세식이다. 샤워장소도 야외에 간이로 만들어져 있다. 마리나 표현에 의하면 전통 러시아식이란다.
오랜만에 푸세식 화장실을 보니 옛 기억이 났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미용사였던 외사촌 누이가 결혼하고 애 낳고 집을 마련했다. 누이에겐 고모가 되는 엄마와 그 집을 갔다. 초등학생인 내겐 상당히 먼 나들이였다. 이미 우리 집은 수세식이었다. 누나 집은 아직 푸세식이었다. 얼마 후에 누나의 딸이 푸세식 화장실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를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들었다. 푸세식 화장실의 큰 구멍을 보면 그 일이 생각나며 나도 모르게 긴장한다.
이제 푸세식 화장실과 찬물 샤워는 끝이다. 이르쿠츠크 공항 앞 호텔에서 하루 자고 내일은 한국 간다.
이렇게 좋을 수가...
이르쿠츠크 공항 바로 앞 호텔에 첵인했다. 리셉션에 있는 러시아 여인 율라가 반긴다. 영어로... 방에 들어오니 모든 가구며 카펫이 새 것이다. 지난 6월 초하루에 인테리어 리모델링하고 다시 오픈했다니 아직 두 달도 지나지 않았다. 침구도 폭신폭신하고 화장실 변기도 반짝반짝 윤이 난다. 어제 올혼섬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이다. 하루 만에 문명세계로 나온 듯하다.
호텔 바로 옆에 9층짜리 쇼핑센터 건축이 한창이다. 호텔 밖에서 같이 담배 피우던 호텔 매니저가 러시아말로 나더러 한국사람이냐고 묻는다. 건축현장의 일꾼들도 모두 한국사람이란다. 현장 바로 옆의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저기서 잔단다. 북한 노동자들이 저 멀리 폴란드까지 가서 일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시베리아의 벌목노동자의 대부분이 북한 사람이란 것도 기억난다. 이르쿠츠크 건설노동자도 전부 북한 사람인가 보다. 지난 토요일 이르쿠츠크 중국집에서 식사할 때도 음식점 옆 공사현장의 인부들이 우리말 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토요일 저녁 8시에도 한창 일하고 있다는 것이 저녁 먹는 내내 불편했다.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아버지는 평양에서 태어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