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샤워를 해야겠다.
담배 끊는 약과 혈압약이 떨어져 간다. 토요일 아침 동네 단골 의원에 갔다.
건물 3층의 자동문이 열리며 너댓명의 동네 어르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혈압측정기 앞 의자에 이미 혈압을 측정한 듯한 모자 쓴 할아버지가 돌아앉아 있고, 카운터와 TV가 잘 보이는 자리에 할머니 한 분이 촛점 없는 눈으로 앉아 있다. 정수기 옆에는 두 어르신이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 한 분은 서고 한 분은 앉아 있다. 할머니 한 분은 처방전을 들고 막 의원을 나서는 참이고 어르신 한 분이 진찰실로 들어가는 중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두 명의 간호사 외에는 대기실의 그 어느 환자보다 내가 젊다는 확신이 선다. 서 있는 자세와 걸음걸이가 이 공간에서 내가 가장 ‘싱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 내 젖가슴과 어깨근육에 슬며시 힘이 들어감을 느낀다. 대기실 공간의 광경이 사진처럼 눈에 찍히는 순간, 대기실 공간을 채우고 있던 냄새 역시 내 코를 강하게 자극한다. 소위 어르신 냄새다. 꾸리꾸리한 냄새가 토요일 아침 동네 의원 대기실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난 추석연휴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거의 한달이 되어 간다.
언제 어느 날 다시 피울지 모르지만 챔OO와 함께 한 지난 몇 주 사이에 내 후각이 놀라우리만치 예민해졌다. 아침 샤워기 밑에 섰을 때 얼굴을 흘러 내리는 세찬 첫 물줄기에서 나는 내 정수리의 냄새를 맡는다.
'아 내 머리와 몸에서 이런 냄새가...'
자기 전에도 이젠 샤워를 해야겠다. 아침에 정수리의 냄새를 맡지 않으려면...
주인공 그르누이는 1738년 한여름 파리의 음습하고 악취나는 생선 좌판대 밑에서 매독에 걸린 젊은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다. 태어나자마자 그는 생선 내장과 함께 쓰레기 더미에 버려지나 악착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남고, 대신 그의 어머니는 영아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로부터 그르누이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된다. 그는 여러 유모의 손을 거쳐 자라게 되는데, 지나치리만큼 탐욕스럽게 젖을 빨고, 무엇보다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냄새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가 그 아이를 꺼렸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르누이 자신은 아무런 냄새가 없으면서도 이 세상 온갖 냄새에 비상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패트릭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담배를 끊으면서 갑자기 내가 그르누이가 된 듯하다. 주변의 온갖 냄새에 신경이 곤두선다. 특히 어르신 냄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