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차량주차 봉사를 한지 20년이 넘었다. 용케 같은 교회에서...
일요일만 성도들이 몰리는 교회는 주차난뿐 아니라 주변 골목들까지 교통혼잡에 몰아 넣으며 민원을 일으킨다. 그래서 거의 모든 교회는 일요일 예배시간에 맞춰 몰려드는 차량의 주차를 안내하고 심지어 valet parking 서비스까지 하는 집사님들의 모임이 있다. 이름하여 차량위원회... 이 봉사는 주일 예배전에도 하지만 예배 끝난 후에도 한다. 빼곡히 들어찬 교회 주차장에서 먼저 떠나시는 분들 차 빼드리고 정리하다 보면 주일 날 교회에 오래 남아 있어야 한다. 이 봉사를 시작한 집사님들은 보통 장로에 피택되어 크고 중요한 다른 봉사를 주관하러 가지 않는한 "한번 주차요원은 영원한 주차요원." 이라며 이 위원회를 떠나지 않는다. 절대 장로가 될 수도 없고, 될 마음도 없는 나는 아직도 교회의 차량안내실을 지키고 있다.
사람들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훌륭한 목사님들은 자신의 교회 성도들을 잘 기억해 내야 한다. 목사님들은 기억력 증진을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주차봉사요원들은 사람을 자동차와 함께 세트로 기억한다. 매주 지각하는 까만 에쿠스 장로님, 자동차 키를 절대 맡기지 않는 벤츠 장로님, 두 딸아이를 태우고 오는 은색 소나타 집사님, 언제 실내 청소 했는지 모르는 무쏘 집사님, 은근히 valet parking을 바라는 검은색 오피러스 집사님...
운전을 포기하신 어르신들은 택시를 타고 오신다. 차량봉사요원들은 특급호텔의 정문 벨보이처럼 교회 앞에 정차하는 택시의 문을 열고 닫는 서비스도 한다. 택시 문을 열고 마주친 가냘픈 권사님이 낯설고 낯익다. 기사 아저씨에게 거스름돈을 받는 과정이 보기에도 느리고 예사롭지 않다. 왼손에는 핸드백을 오른손에는 거스름돈과 지팡이를 같이 쥐고 있다. 거스름돈을 핸드백에 넣으면 좋으련만 손이 모자라고,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이 급하다. 몸을 돌려 지팡이를 잡고 택시에서 내리기가 무척 힘들다. 부축하려고 권사님 겨드랑이를 잡으면서 기억이 났다. 이 권사님은 쥐색 그랜저 TG를 항상 혼자 운전하고 오시던 분이었다. 할머니들의 효도화인 사스가 아닌 굽이 있는 앵클부츠를 신고 계셨던 기억이 난다. 걸음걸이도 경쾌하고 주차요원들과 마주치면 수줍어 하시던 권사님이다. 예배가 끝나고 보통 늦게 교회를 떠나셔서 주차정리마감 시간대에 자주 마주치던 분이었다.
그런 권사님이 운전은 커녕 택시에서 혼자 내리는 것조차 힘들어 하신다. 교회 현관으로 권사님을 부축하는 중에 어눌한 말투로 권사님이 말하신다.
"제가 4달만에 오늘 처음 교회 나왔어요. 제가 그 사이에 이렇게 됐어요."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가 가르쳐 줬으면 좋으련만...
강의 중간 휴식시간에 카톡이 울린다.
"애엄마가 쓰러졌다. 너무 슬프다. 욕심없는 사람인데... 이제 좀 편히 재미있게 살려는데..."
이해가 잘 안되는 친구의 카톡에 바로 전화를 했다. 지금 대학병원에서 아내의 뇌수술 중이란다. 동네 노래교실에 갔다가 의식을 잃고 갑자기 쓰러졌단다. 119 불러 응급실 왔는데 CT 찍고 뇌출혈이라 바로 수술 시작되었단다. 자꾸 눈물이 나서 말 못하겠단다.
불안하고 답답하여 카톡한 것이었다. 내 나이 육순이건만 이럴때 어찌 위로해야 하는 줄 모르겠다. 일단 전화 끊고 인터넷으로 뇌출혈을 찾았다.
뇌출혈과 뇌경색을 합하여 뇌졸증(중풍)이라고 한다. 뇌출혈(13%) 보다는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87%)이 훨씬 더 많단다. 뇌졸증은 얼마나 빨리 응급실로 왔느냐가 사망 및 후유장애 여부를 결정한다. 뇌졸증 환자의 1/3은 병원 도착을 전후하여 사망하고, 1/3은 수술후에 상당한 장애가 남고, 1/3 정도가 수술 후에 심각한 장애없이 완치될 수 있단다. 뇌졸증의 재발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는데 5년 이내 재발률은 20-40%에 이른단다.
강의를 마치고 카톡을 했다. 수술 끝났냐고? 4시간이 넘었는데 아직 진행중이란다. 혼자 있냐? 큰 아들이랑 있단다. 바로 병원으로 달려 갔다. 어찌 위로할 줄 모르니 옆에 있으면 도와줄 일이 있을지 모르겠어서...
친구의 아내는 다행히 마지막 1/3에 속했다.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열흘 회복하고 장애 없이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본인의 육순 생일을 병원에서 맞이했다.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이 아니고 일반 병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기에 문병을 갔다. 후유 장애가 없다는 것에 부부가 다 감사하고 있었다. 위로할 일이 없다는 것이 내겐 다행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얼마나 귀한 줄을 일상을 벗어나야 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오늘 같은 내일이 매일 올듯이 산다.
근거 없는 낙천주의 속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