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은 만실이다.
올해 만 90을 넘긴 아버지가 뇨관암 판정을 받은 것은 작년 봄이었다. 뇨관이란 신장과 방광을 연결하는 두 줄기의 오줌관이다. 그 중 하나에 종양이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증상은 없고 전립선 비대에 따른 야간빈뇨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의사들은 수술하기를 주저했고 아버지도 아프지 않다며 방광내시경조차 거부하셨다. 그러나 겨울이 오면서 혈뇨에 놀라 병원을 다시 찾았다. 뇨관에 생긴 종양이 뇨관을 막고 있단다. 뇨관이 막히면 소변이 차올라 신장이 부어오른다.
뇨관암의 전형적인 수술방법은 뇨관뿐 아니라 연결된 신장까지 다 들어내는 것이다. 피를 많이 흘리는 수술이라 년로하신 아버지가 버티기 힘들 수 있다며 의사도 권하지 않았다. 두번째 옵션은 종양부위의 뇨관만을 잘라내고 짧아진 뇨관을 다시 방광에 붙이는 로봇수술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 옵션은 오줌관을 따라 들어가 레이저로 통로를 막고 있는 종양의 일부만을 제거하는 것이다. 파이프 청소하듯이...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의사가 물었다. 수술의 위험과 경과에 대해 모르니 의사선생님이 선택하라고 오히려 선택권을 넘겼다. 의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마지막 옵션으로 하겠단다. 복부에 구멍내지 않고 뇨관을 청소하는 것으로... 그리고 바로 다음주에 수술 날짜를 잡아준다.
수술 하루전에 입원하여 검사 받고 금식해야 하는데 입원예정일 오전 11시에 입원실이 없다고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전화해보니 하루에 80만원하는 특실도 없단다. 그 큰 병원에... 오후 5시까지 기다리고 있으라더니, 오후 3시에 재활의학과 2인실에 자리 하나 났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은 만실이다.
입원 다음 날 12시부터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실 밖 보호자 대기실에 앉았다. 열개가 넘는 수술방의 현황이 모니터에 뜬다. 시작한지 한시간 쯤 지났을까?
"윤OO님 보호자 수술실로 들어 오세요."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수술 중에 보호자를 찾다니...
수술실 철문 안으로 들어서니 한쪽에 상담실이 있다. 간호사가 상담실에서 기다리란다. 수술복 입은채로 낯익은 의사가 나온다. 종양이 커서 레이저로 청소가 안된단다. 전신마취를 잘 견디고 계시니 두번째 옵션으로 가잔다. 로봇수술로 종양부위 뇨관을 제거하는...
이미 수술동의를 했지만 수술 중에 수술내용이 크게 변경되었으니 수술동의를 다시 해야한단다.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하겠는가?
결국 아버지는 네시간의 수술을 무사히 견뎌내셨다.
10여년 전에 우리나라에도 로봇수술이 도입되어 어려운 복강경수술을 대체하고 있는듯하다. 상용화된 수술로봇으로는 다빈치로봇이 유명하다. 수술로봇의 개발의도는 원거리에서의 수술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전쟁터나 아니면 외딴 오지에서 의사의 원격조종으로 로봇팔이 환자를 수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로봇이 많이 발전하여 아주 섬세하고 미세한 움직임이 가능해지면서 의사의 부담을 크게 경감시켰다. 로봇 자체의 가격도 몇십억이지만 로봇을 사용하여 수술이 행해질 때마다 일종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해서 수술비용이 훨씬 비싸다. 일반적인 복강경수술과 로봇수술의 사례를 비교하여 큰 차이가 없다는 논문들도 발표되고 있기는 하나 의사 입장에서는 로봇수술이 훨씬 수월할 듯하다. 내가 의사라도 더 좋은 시야를 확보해 주고 더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한 로봇수술을 선호할 것 같다.
"현대 소나타를 운전할래? 더 잘 달리고 더 잘 서는 포르셰 파나메라를 운전할래?"
신장암 수술 중에서 신장 일부분만 잘라내는 부분절제술이나 전립선암 절제술은 복강경으로는 수술하기 어려워 로봇수술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로봇을 사용하는 수술 비용은 복강경 수술 비용의 열배수준이라고 한다. 수술의 난이도와 병원의 정책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술비만 1000만원 전후인듯...
올해 아버지는 두번의 전신마취 수술을 받으셨다. 봄에는 복강경에 의한 맹장제거 수술을 받고 이번에는 로봇의 도움을 받는 뇨관의 종양제거 수술을. 이번에는 맹장수술 때보다 회복이 빨랐다. 로봇수술이라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소화기에 문제가 없어 영양섭취가 빨라서인지도 모르겠다.
딱 일주일 입원하고 예전 모습으로 퇴원하셨다.
내 육순도 이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