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an 05. 2018

장례식 날짜를 본인이 정한다.

사전의료 의향서보다 더 적극적인 의지.


일본의 어느 노인이 암에 걸려 치료받다가 암이 전이되어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몸과 마음이 더 쇠약해지기 전에 시내 호텔의 그랜드볼룸을 잡아서 팔순잔치하듯이 일가친척과 옛 회사 동료 및 친구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작별인사하려고...
정말 고마웠다고...

2017년 10월의 일이었다. 우리나라 뉴스가 되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귀천’에서

천상병 시인은 인생을 소풍이라 했다.
잘 놀다 간다고...
재미있고 아름다웠다고...

자살은 나쁘다고 우리 모두 알고 있다. 1970년대 중반 내 사춘기 시절 자살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자살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해서가 아니라 진정 자살이 나쁜 것이냐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사춘기 때 사는 것이 힘들었다.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그래서 인터넷도 없던 그 시대에 자살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을 찾는다. 그 당시 나는 아직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성경에서 자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은 기억이 난다.

모든 피조물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주인인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자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인을 화나게 하는 일이다. 내가 많은 양들을 기르고 있다. 젖도 짜고 다 크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털도 깎는다. 그 양 중의 한 마리가 살기 싫어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되나? 종이나 노예가 살기 싫다고 자살해 버리면 주인은 어떤 마음일까?

그래서 절대 자살하면 안 된단다.

우리는 지금도 자살하려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말린다. 심지어 자살하려는 사람을 말리다 죽는 사람도 어쩌다 있다.

인간 말고는 자살하는 동물이 없다고 한다. 인간도 동물이라 가장 강한 본능은 생존이다. 그러나 동물 중에 인간만이 의식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더 이상의 생존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자신의 의식으로 확실히 인식했다면 그 마음을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나이 든다는 것은 노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노화가 엄밀하게 같은 속도로 진행될 수 없다. 육체보다 정신이 먼저 노화되어 소위 치매에 걸리면 인간의 존엄성을 잃는다. 정신은 멀쩡한데 육체가 더 이상의 회복이나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더 이상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본인이 확실히 안다 해도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의료 의향서의 작성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말짱한 정신으로 자연스럽게 죽기를 고통스럽게 기다릴 뿐이다.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시간을 줄여줄 수 없을까?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합의하거나 최소한 용인이라도 한다면 자살이나 안락사 같은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장례식 날짜를 본인이 정하는 것이다. 3일장이니 5일장이니 하며 본인은 죽고 나서 자식들의 친지들이 문상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생전에 보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싶다. 용서하고 싶은 사람 다 용서하고 싶다. 용서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용서받고 싶다. 수면내시경 하거나 전신마취했다 깨어나지 못하는 아니 본인이 원해서 깨어나지 않는 식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

전혀 아프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그렇게 되는 시대가 올 것 같다.

케이프타운 공항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에 미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