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떠난다.
여행은 어디를 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를 떠나는 것이다. 일상을 떠나는 것이다.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실은 걱정거리, 불안함, 지루함 및 짜증남을 잔뜩 갖고 있다. 그것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몇년 전 어느 철학자의 강연에서 앞에 앉은 학생들에게 강연자가 물었다. 당신의 핸드폰 사진함에 무엇을 갖고 있느냐고. 좀 보자고. 좋아하는 여친이나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냐고 묻는다. 그런 사진이 없다면 당신은 지금 불행한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 제일 앞 VIP 석에 앉아 있던 교수인 나는 약간 당황했다.
내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
대학생들은 여친이나 애인과 데이트를 한다. 보통 영화보고 먹고 마시고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 현실이 좋아서 함께 사진을 찍어 영원히 기록한다. (헤어지면 왕창 삭제할 수도...) 자연히 사진함에 많은 사진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면 엄청난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는 일에 너무 몰두하여 그 자체가 여행인 것 같을 정도이다.
아내와 장성한 아이들이 있는 육순을 넘긴 나이에는 사진찍을 일이 별로 없다. 사진함을 뒤져봐야 한참전에 어디선가 찍은 여행사진만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철학자의 강연을 들은 이후에 더 적극적으로 사진찍기 시작했다. 눈 앞의 전경이 조금만 색달라도 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눈 앞에서 벌어지면... 사진속에 그 때 느낀 내 생각과 감정을 함께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불안하고 불행한 현실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속에는 신기하고 근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려고 일상에서도 열심히 찍는다.
그리고 틈만 나면 떠난다. 혼자라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