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an 10. 2018

열심히 찍는다.

틈만 나면 떠난다.



여행은 어디를 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를 떠나는 것이다. 일상을 떠나는 것이다.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실은 걱정거리, 불안함, 지루함 및 짜증남을 잔뜩 갖고 있다. 그것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몇년 전 어느 철학자의 강연에서 앞에 앉은 학생들에게 강연자가 물었다. 당신의 핸드폰 사진함에 무엇을 갖고 있느냐고. 좀 보자고. 좋아하는 여친이나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냐고 묻는다. 그런 사진이 없다면 당신은 지금 불행한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 제일 앞 VIP 석에 앉아 있던 교수인 나는 약간 당황했다.

내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

대학생들은 여친이나 애인과 데이트를 한다. 보통 영화보고 먹고 마시고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 현실이 좋아서 함께 사진을 찍어 영원히 기록한다. (헤어지면 왕창 삭제할 수도...) 자연히 사진함에 많은 사진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면 엄청난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는 일에 너무 몰두하여 그 자체가 여행인 것 같을 정도이다.

아내와 장성한 아이들이 있는 육순을 넘긴 나이에는 사진찍을 일이 별로 없다. 사진함을 뒤져봐야 한참전에 어디선가 찍은 여행사진만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철학자의 강연을 들은 이후에 더 적극적으로 사진찍기 시작했다. 눈 앞의 전경이 조금만 색달라도 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눈 앞에서 벌어지면... 사진속에 그 때 느낀 내 생각과 감정을 함께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불안하고 불행한 현실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속에는 신기하고 근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려고 일상에서도 열심히 찍는다.

그리고 틈만 나면 떠난다. 혼자라도 떠난다.

지난 12월 연구실 창 밖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