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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23. 2018

사람들은 세는 것을 왜 좋아할까?

어떤 인생이 잘 산 인생일까?


페북의 비공개 그룹 ‘여행에 미치다’에 가입한 이후 내가 페북을 열 때마다 엄청난 포스트가 쏟아져 들어온다. 국내여행, 외국여행에서의 사진과 동영상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역시 여행에 미친 사람이 정말 많다는 얘기다. 그리고 하고 싶은 얘기도 정말 많다는 거다. 얼마 전 어느 포스트에 ‘200일 동안 34개국 여행을 한 중에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베스트 10’ 이란 것이 있었다. 우선 200일을 여행했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냥 나가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34개국이나 둘러보았다는 것도 대단하다. 부지런히 찍고 찍고 다녔다는 것이다. 내 딸도 세계일주 여행한다고 집 나가 거의 일 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다. 며칠 동안 몇 나라라고 들었는데 기억에 없다. 이즈음 젊은 이들은 다 그런가 보다. 워낙 대단한 청년과 처녀들이 많다 보니...

사진 베스트 10 이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숫자 10은 많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뭔가를 뽑을 때 10까지만 뽑는다. 10등과 11등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아슬아슬한 11등은 아예 얼굴을 내밀지도 못했다. 베스트를 뽑는 기준은 순전히 본인의 주관에 의해서였을 텐데 말이다. 사실 거의 모든 경선에서는 1등만 의미가 있다. 1등과 2등의 차이가 아주 경미한데도 말이다.

“A winner takes all!”

비교하는 것이 본능이다. 내 여행과 남의 여행을 비교하고 싶다. 어느 여행이 더 대단한 여행인지... 그래서 며칠을 여행했느냐? 몇 개국을 여행했느냐? 를 따지는 것이다. 정량적으로 비교해야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센다.

모든 스포츠 경기는 정량적 스코어로 결정된다. 나 혼자 치는 골프도 그날 스코어가 어땠냐에 따라 내 기분이 달라진다. 자신이 갖고 있는 나름의 기준을 만족하면 기분 좋고 그렇지 못하면 집에 가 잘 때까지도 우울하다.

정량화하지 않으면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다면 개선할 수 없다. 정량화하지 않고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이 경영학의 원칙이라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그만큼 정량화는 많은 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어디가 가장 좋았나를 돌아보게 된다. 누가 물어보기도 하지만 나 자신도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스마트폰의 사진 함을 열어본다. 어디에서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느냐가 답을 준다. 이제 남아공 여행도 내일이면 끝이다. 지난 19일 동안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Table mountain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날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으니...  12 곳의 골프장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누가 묻는다면 Pinnacle Point Golf Club 이 제일 좋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유일하게 두 번 친 골프장이고 거기서 가장 많은 사진을 남겼으니...


그렇지만 정량적으로 모든 것을 비교할 순 없다.

어떤 인생이 잘 산 인생일까?

누구나 한번 사는 인생 잘 살고 싶다. 어떻게 살았어야 잘 산 인생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죽은 자들의 인생을 비교할 수 있을까? 특히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이곳 남아공의 골프장에서 골프 치는 백인들은 다 잘 산 인생일까? 그래서 행복할까? 백인들의 캐디백을 메고 있거나 골프장을 관리하는 흑인들은 잘못 산 인생일까?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데...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결코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는...


여기 왔다고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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