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걱정이 덜한 어느 날 대학후배와 골프를 쳤다. 나보다 두살 아래이니 내후년이 이 친구도 환갑이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내일 고향인 부산에 간단다. 아들내외와 손녀까지 데리고 부모님 만나러 간단다. 어머니는 고관절이 다 망가져 요양병원에 누워 계시고 아버지는 혼자 계신단다. 여동생 둘이 근처에 살면서 부모님을 보살피고 있단다. 부모님은 이번에 증손녀를 처음 보신단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단다.
맏아들이자 외아들인 내 후배는 그동안 부모님과 의절하고 살았단다. 화해한지 얼마 안되었단다. 왜 의절했는지가 궁금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대에 입학했으니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이 무척 컸겠단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며느리인 자신의 아내를 무척 힘들게 했단다. 너무 힘들게 해서 도저히 안되겠더란다. 그래서 결국 부모님 안보고 몇십년을 살았단다. 그 동안 자신의 두 아들 잘 키워 큰 아들은 결혼했고 작은 아들은 성모병원 레지던트란다. 손녀 데리고 큰 아들은 2주마다 집에 오고, 아직 미혼인 작은 아들은 매주 집에 온단다. 두 아들과 술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신단다. 기골이 장대한 후배는 보기에도 한 술 할 것 같다.
후배에게 그랬다.
"후배님 지금 인생의 전성기네!"
손녀 재롱보며 아들과 한잔하고, 아직 수련 중인 둘째 아들과도 많은 얘기를 할테니 지금보다 더 좋은 시절 있을 수 있겠냐고 했다.
그러나 맏아들과 의절하고 지낸 후배의 부모님은 당연히 그런 전성기를 누리지 못하셨을 것이다. 아들 탓, 며느리 탓하며 자신들의 외로움을 달래셨을 것 같다. 결국 나이 들어 거동도 힘들어지면 가족만 남는다. 아주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나 친척도 이젠 만나기조차 어렵다.
나는 결혼한 딸과 자주 시간을 갖는다. 가까이 사는 딸이 자주 전화하고 카톡 한다.
"아빠 어딨어?"
"학교 내 방."
"나 지금 일 끝나고 지하철 탔는데 저녁에 뭐 있어?"
"아니. 강의준비나 할려 했지. 왜?"
"명훈(사위)인 저녁 회식 있대고,
나 혼자 저녁 먹어야 해서..."
"그래? 그럼 나랑 먹자. 지하철 역에서 픽업해?"
"그럼 좋고."
"알써. 동대문 운동장역에서 환승하며 문자해.
그때 나갈께."
"ㅇㅋ"
프리랜서인 딸은 자기가 좋아하는 다양한 일들로 무척 바쁘다.
"아빠 다담주 수요일에 모해?"
"음... 수요일이니 강의는 없고, 아직 잡힌 일 없는데..."
"나 프로젝트 때문에 충주에 있는 술 박물관 가야 하는데 같이 안갈래?"
"술 박물관? 그런 것도 있냐? 운전기사가 필요한 거야?"
"아니 혼자 가도 되는데, 아빠 같이 가면 좋지.
그리고 아빠 술 좋아 하잖아."
"너 일 때문에 가는 거니까 차 기름값이랑 수고비는 줄꺼지."
"당연하지."
"그럼 ㅇㅋ"
딸의 출장에 가끔 동행한다. 동행이라기 보다는 운전기사로 따라 나서지만, 오고 가며 딸과 많은 얘기를 한다. 이렇게 딸과 같이 있다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한다.
지금이 내 전성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