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구글맵이 있다면...
미얀마 양곤 공항에 2019년 1월 2일 밤 열 시에 착륙했다. 입국심사받고(전에는 50불 도착비자가 있었단다.) 부친 짐(골프채 같은 Oversized baggage는 나오는 구멍이 따로 있다)을 찾고 세관은 무사통과(여러 명이 있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하고 나오니 사람들이 홀에서 기다리고 있다. ‘Jae Kun Yoon’이 쓰인 종이가 가깝게 보인다. 젊은 미얀마 청년이 나를 안내한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일본에서 수입된 중고 도요타의 트렁크를 연다. 7시간 정도 참았던 담배를 한대 피우고 싶으나 그럴 상황이 안된다. 시계를 보니 거의 열한 시에 가깝다.
공항에서 13킬로 정도 떨어진 양곤 외곽의 Mother’s Home Motel(이렇게 멀리 있고 2박에 70불도 안 했는데 공항 픽업과 센딩이 무료다.)까지는 차로 25분 정도 소요된다고 구글맵이 가르쳐준다. 양곤 시내 중심부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했는데 밤이기도 하고 중심부가 아니라 그런지 한산하다. 가로등이 어둡다. 콘크리트 포장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구글맵을 계속 들여다본다. 나를 제대로 호텔로 데려가고 있다고 구글맵이 나를 안심시킨다. 왼쪽에 보이는 숲이 공원이고 골프장 진입로를 막 지난 것도 구글맵에서 확인된다.
이즈음 미얀마는 무비자이다. 로힝야족 핍박(학살인가)으로 전 세계 로부터 비난받고 있는 미얀마가 유럽 관광객이 줄자 무비자 입국(관광입국 30일)을 지난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신문에 난 기사를 읽고 바로 미얀마행 항공편을 혼자 일단 끊었다. 미얀마가 붐비지 않는다는 것이니...
미얀마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천 달러대다. 도로를 달리는 거의 모든 차가 일본이나 한국에서 수입된 중고차다. 한글로 써진 시내버스의 행선지도 자주 보인다. 아주 드물게 신형 현대나 도요타가 보인다. 자동차의 발전기와 시동 모타를 분해 수리하는 가게가 자주 눈에 보인다.
아침을 먹고 나니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일단 환전을 해야 한다. 프런트 아줌마에게 어디서 환전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얼마나 바꿀 거냐고 묻는다. “Two hundred dollars “ 그 정도는 자기가 바꿔줄 수 있단다. 그러더니 스마트폰 계산기로 1525 곱하기 200을 하더니 305,000을 보여준다. 환전은 싱겁게 끝났고 이제는 인터넷 접속용 미얀마 폰을 만들어야 한다. 전에 사용하던 작은 아이폰을 가져왔으니 심카드만 사서 끼우면 된다.
택시운전사와 흥정하는 어려움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그래서 기차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양곤을 순환하는 기차가 있다. 이 순환기차가 양곤의 관광명소다. 기찻길 옆 미얀마 사람들의 실생활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호텔에서 제일 가까운 역이 1킬로 정도라 걸어서 갔다. 개찰구나 담장도 없이 엉성한 플랫폼과 표 파는 사무실만 있다. 우리 돈으로 150원 정도 하는 표를 끊고 양곤 중앙역으로 향했다. 낮시간이라 낡은 객차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얼굴에 흰 칠을(종교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선크림 대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아줌마, 할머니, 아이들 그리고 아저씨... 남루한 옷차림과 행색에서 고달픈 생이 보인다.
미리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 받으면 와이파이 없이도 내가 어디 있는지를 구글맵이 보여준다. 자주 들여다보면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이 어디 있고 기차역까지 제대로 걷고 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는다면 길을 잃을 가능성은 없다. 이동에 자신이 생긴다. 구글맵이 미얀마에서 주님을 대신하여(?) 나를 인도하고 있다. 아무리 넓더라도 2차원 공간에서 나의 존재를 리얼타임으로 확인해준다. 다섯 정거장을 가면 양곤 중앙역에 도착하고 지금 지나고 있는 역이 무엇인지도 항상 알려준다. 애매모호하고 낯선 상황에서도 전혀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결코 길을 잃고 헤맬 리 없기 때문이다.
저녁을 호텔 바로 옆의 식당에서 미얀마 사람들 속에서 혼자 했다. 변변한 메뉴판조차 없는 대로변 식당이라 주문에도 어려움이 있다. 꼬치를 굽고 있어 삼겹살과 메추리알을 시켰다. 맥주와 볶음면도 시켰다. 테이블마다 생맥주잔이 한가득이고 바로 옆 테이블의 세 중년남들은 발렌타인 위스키도 병째로 놓고 마시고 있다. 나 같은 이방인이 있으면 관심 가질 만 한데 전혀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들이 나의 존재를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행이다. 내가 편하다. 오직 젊은 아니 어린 웨이터들만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주위에 아는 사람 없이 혼자 외국에 있으면 실존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절감한 실존은 보통 죽음을 생각나게 한다. 더욱이 이번 여행에는 죽음에 관한 책을 두권이나 들고 왔다.
삶과 죽음은 이어진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려다가 보통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만다. 재수 없는 생각이라고,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살기도 힘든데 왜 죽음을 생각하냐고...
인생의 구글맵이 있다면 좋겠다. 지금 어디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언제가 내 인생의 종착역인지를 가르쳐주는 그런 맵이 있다면 전혀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노후도 걱정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