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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05. 2019

미얀마 3

아무리 좋은 경험도 매일 하면 노동


만달레이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침 식사 시간을 놓친 것은 아닌지 시계부터 본다. 다행이다. 어제 밤늦게까지 책 읽고 글 쓰다 그냥 잠들어 버렸다.(글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면서) 침대 옆 창문으로 멀리 만달레이 언덕이 보인다. 어제 오후보다 희미하다. 하늘은 파랗다. 스모그가 낮게 만달레이를 덮고 있다. 우리나라 미세먼지 보통과 나쁨의 중간 정도라고 나름 판단한다. 오래된 중고차가 대부분이고 배기가스 면에서 특히 나쁜 스쿠터와 오토바이가 엄청 많으니 스모그 발생이 당연하다.

지구에 적정한 인간의 수는 몇 천만 정도라고 한다. 수백 년 사이에 인간이 엄청 번식했다. 무려 수백 배나... 70억이니 80억이니 하는 것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곧 100억이 될 것이라고도 하고 이미 됐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인간들이 도시에 모여 살면서 지구를 엄청 오염시키고 있다. 대기, 수질, 폐기물 할 것 없이 지구를 더럽히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처럼 미래를 알 수 없는 방사능 오염까지...

만달레이 여행하면 꼭 방문해야 한다는 만달레이 언덕을 이렇게 호텔방 침대에서 스모그 사이로 보는 것으로 방문의 수고를 대신하기로 마음먹었다.

만달레이 팰리스가 호텔에서 아주 가깝게 있다. 팰리스의 담장이 보인다. 해자로 둘러싸인 궁은 엄청 넓다.(구글맵을 보니) 너무 넓어 둘러보는 것이 고역이라고 트립어드바이저 리뷰에 많은 사람들이 올렸다. 기온은 24도 정도이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햇빛을 받으며 엉성하게 복원된 궁의 관람도 포기했다. 침대 머리맡에 걸린 팰리스 그림이 주는 느낌을 대신 만끽하기로 했다.

‘팰리스’ 하니 생각난다. 지난 11월 18일 일요일 오후에(그 날 찍은 사진을 찾아보면 안다) 결혼한 딸과 둘이 창덕궁을 갔었다. 관광학 박사과정 중인 딸이 과제를 하기 위해 가야 하는데 혼자 가기 그러니 동행을 제안했었다. 이런 제안은 만사 제치고 받는다. 약간의 쌀쌀함과 거의 떨어진 낙엽들이 늦가을을 느끼게 해 줬다. 궁 안에서 열린 야외 음악공연도 새롭고 만삭이 다가오는 딸과 함께 궁 안을 둘러보는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60 평생에 창덕궁은 다섯 번 이상 갔던 것 같다. 국민학교 그림 그리기 대회도 몇 번 기억나고, 고종이 타던 자동차도 봤었다. 대학 시절 데이트도 누구와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분명했었다.

경험이 아무리 좋아도 자주 할 수는 없다. 매일 한다면 노동과 다를 바 없다.

글쓰기가 재미있다.

어느 작가는 소설을 탈고하면서 글쓰기를 해산의 고통에 버금간다 했다. 글쓰기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그 작가가 글쓰기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노동이니 그렇게 힘든 것이 당연하다. 모든 노동은 지루하고 힘들다. 아무리 좋아서 시작한 것이라도 생계를 위한 노동이 되면 힘들다. 난 생계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기에 취미처럼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반복되는 노동은 두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난 글 쓰는 동안 두뇌의 모든 곳이 자극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난 그 느낌이 좋아졌다. 지각(perception), 추억의 반추, 의식(consciousness), 연상, 조합 등등의 느낌이...

환자를 보며 살던 어느 의사가 암 진단을 받았다. 일단 진료를 접고 암 치료를 받으며 쓴 글을 읽었다. 앞으로 살 시간이 얼마인지 정말 궁금하단다. 만약 세 달이라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고, 일 년이라면 책을 한 권 쓰고 싶단다. 만약 10년이라면 다시 진료를 보고 싶다고.

은퇴가 가까운 이 나이에 드는 생각은 ‘글을 쓰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상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이제 그만 슬슬 호텔을 나가야겠다. 이라와디 강가로 걸어가서 점심도 해결하고 만달레이를 느껴야겠다. 글 쓸 때처럼 모든 뇌를 흔들면서 걸어야겠다.

30분 걸어 이라와디강가 River view hotel
와이파이도 빵빵하고 메뉴판 가격도 달러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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