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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Feb 27. 2016

진정한 자아에서 우러나온 명령

나스카 라인


남미여행의 첫 이틀 밤을 페루 리마에서 자고 피스코와 이카사막을 지나 밤에 버스로 이 곳 나스카에 도착했다. 페루의 나스카는 하늘에서 보는 거대한 그림으로 유명한 곳이다. 고대의 나스카인들이 땅위에 그려 놓은 그림들이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고 호들갑 떠는 곳이다.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새벽에 경비행기를 타야 한다. 보통 130불 하는 것을 우리는 할인해서 80불에 탈 수 있단다. 아직 시차적응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또한 한번도 타보지 않은 경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다. 나스카라인을 보기 위한 경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침에 그냥 계속 늦잠을 청하기로...


보통 이런 결정을 하기가 부담스럽다. 앞으로 남은 여생에서 이 곳에 다시 올 가능성은 희박하니 이 번이 유일한 기회같은데 포기하고 잠을 잔다는 결정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결정일까봐 걱정된다. 더욱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다 탄다는데 나만 선택 안한다는 것이 바보스런 결정일까봐 우려된다.


중학교 올라가는 봄방학에 온 가족이 종로서적에 나들이 나갔다. 이제 나는 중학생이 되었으니 고전을 읽어야 한다며 어머니가 사준 책이 '데미안'과 '테스' 였다. 깨알같은 글씨가 세로로 나열된 동화문고판이었다. 그 어머니는 그 다음 해 여름 신부전으로 돌아가셨다.

데미안과 테스는 내게 영원한 숙제 같았다. 사실 테스는 그 후에 상영된 영화 속의 나스타샤 킨스키의 아름다움이 너무 강해서 테스와 나스타샤 킨스키가 동일시 되었지만 데미안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았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어머니를 좋아한것인가? 아니 사랑한 것인가? 베아트리체란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과 함께 사춘기 직전 내게 데미안은 너무 난해한 고전이었다.


"나는 진정한 자아에서 우러나온 명령에 따라서만 살기를 바랬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있던 구절이다. 처음 서양고전을 접하고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구절이었다. 그 후 몇 십년 동안 자아에서 우러나온 명령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국 본능에 따른 결정인 것을....

여행에서 우리는 자기자신의 자아에서 우러나온 명령에 따른 선택을 한다. 그래서 그러한 선택의 연속인 여행이 즐거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 자신의 자아에서 나온 명령에 따른 것이라는 확신이 요구된다. 그래야 걱정이나 후회가 없는 선택이 된다.


나스카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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