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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r 25. 2019

귀여운 여인 vs. 우아한 노인


여자고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물었다. 장래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대부분의 꿈 많은 여고생들은 온갖 근사한 직업들을 나열했다. 어떤 직업들이 있었는지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여학생이 “귀여운 여인이 되고 싶어요.” 했단다. 그 순간 같은 반 학생들은 자지러졌고 선생님은 빙그레 웃었단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귀여운 여인’을 최근에 읽은 친구들은 그 의미를 금방 깨달았단다. 귀여운 여인이 되고 싶다던 그 여학생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고, 아이 넷을 낳고, 전업주부가 되어 귀여운 여인이 되었단다.

산후조리를 위해 딸이 이즈음 내 집에 있다. 외손자와 사위도 내 집에 있다. 세 시간마다 젖 달라고 보채는 아이에 온 가족이 매달려 있다. 배냇짓하는 손자가 너무 귀엽다. 포동포동한 종다리의 촉감이 너어무 좋다. 자고 있는 아이가 제일 이쁘다. 그러나 제대로 잠을 못 자 항상 피곤해 보이는 내 딸이 너무 안쓰럽다. 이제 딱 4주가 지났건만 이렇게 힘든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되는지 모르겠다. 온갖 아이용품 사이에 엄마가 된 내 딸이 뒤적이는 책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중에 '전업주부입니다만' 이란 책이 어쩌다 내 손에 잡혔다. 저자는 살다 보니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고등학교 때 이미 귀여운 여인이 되겠다 했던 친구의 이야기로 자신의 삶을 풀기 시작했다. 전업주부인 아내이자 엄마의 삶을...

지금 누가 내게 장래(환갑이 지난 나이에 무슨 장래가 있겠냐마는)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우아한 노인이 되고 싶어요.” 할 것이다.


진정 우아한 노인이 되고 싶다. 틀딱 거리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쩝쩝대지 않고, 꾸부정하지 않고, 좋은 냄새나는 우아한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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