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서울의 어느 대학교 총장 예비후보자 소견발표회에서 한 후보가 던진 첫 문장이다. 과연 발표장을 꽉 채운 교수들과 직원 선생님들 중에 나 말고 행복하다고 생각한 분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객관적 시각으로 보면 대부분 행복한 사람들이다. 대학교라는 비교적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고, 학교가 서울에 있으니 대한민국 국민의 반이 사는 수도권에 거주지를 갖고 있을 테고... 그러나 대부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 총장 후보자가 “행복하십니까?”로 자신의 소견발표를 시작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동기 동창회를 나가면 아직도 정년이 보장되고 퇴직까지 몇 년이 남아 있는 대학교수들을 회사에서 이미 은퇴한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느낀다. 오래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행복이란 살짝 지나가는 감정이다. 그래서 행복감을 계속 느끼며 살기는 어렵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아무리 기쁜 일이라도 그 일이 발생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누구나 무덤덤해진다. 행복이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무덤덤해지기 전에 또 발생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즉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긴 쉽지 않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어찌 행복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행복을 계속 추구한다. 살아있는 목적이 행복추구 인지도 모른다. 미래에는 행복해질 거라 믿으며 오늘의 노동을 감수하며 참고 인내한다.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 떨림과 울림, 김상욱 지음 -
이론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는 과학을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무리 쉽게 이야기해도 물리를 기반으로 한 기계공학을 전공한 내게도 물리 이야기는 어렵다. 김상욱 교수에게 큰 영향을 준 책 중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있다. 사피엔스는 어렵지 않지만 내게도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책이다. 이 책이 내가 다니는 대학교 1학년 교양 교과서이다. 19살 꿈 많은 대학 신입생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하다.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이 모두의 소망인데 소망도 상상이고 행복이란 것도 사피엔스의 상상의 산물이란 확신이 든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자식이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할 수 있겠나 싶다.
일상을 떠나면 어려운 책을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이미 읽은 책도 새롭게 다시 이해되기도 한다. 결국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사피엔스들은 이 생각만 하다가 결국 사라지는 존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