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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Dec 23. 2019

외손자를 돌보면서

모든 가치가 사피엔스의 상상의 산물?


근처에 사는 결혼한 딸이 제게 개인 톡을 자주 합니다.
“지금 모해?”
“담주 금요일 오후에 뭐 있어?” 하고 말입니다.

제가 외로울까 봐 보내는 것이 아니고 이제 10개월이 되어가는 자신의 아들을 봐줄 수 있냐고 묻는 것입니다. 싫지 않습니다. 중요한 선약이 아니라면 만사 제치고 자발적으로 외손자를 맡습니다. 제게 할당된 시간은 보통 세 시간을 넘지 않습니다. 딸이 제게 맡기고 자신의 중요한 일을 보고 찾아가거나 사위가 퇴근하면서 데려갑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출생부터의 성장과정을 관찰할 좋은 기회입니다. 외손자를 돌보는 시간 동안은 결코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잠깐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외손자가 자지 않는 한...

부모의 완전한 보살핌을 지나 조금 성장하면 부모가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한 답니다. 자신의 모든 욕구가 부모에 의해서 해결되니까요. 결국은 전지전능한 부모에게서 인정받고 싶어 한답니다. 더 성장하여 학교를 거쳐 사회에 나가는 동안 친구들과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인간은 본능적으로 갖고 있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제일 큰 것 같습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니까요.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여 불쌍해진 인생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흔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문제는 부모의 기대에서 시작됩니다. 사실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이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부모가 생각하는 행복한 인생을 부모 자신의 틀로 만듭니다. 자식의 틀이 아니고. 나는 이렇게 못살았지만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기대와 일종의 강요를 합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면서...

‘부모 된 사람들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고자 함이다.
부모 된 사람들의 가장 큰 지혜로움은
자신들의 삶이 자식들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본 글귀 같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뒀는데 정확히 어디서 본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제게 있어 사진으로 메모했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화하여 부모가 산 세대와는 너무 다른 세대를 자식들은 살아갑니다. 제가 가끔 돌보는 외손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시대를 살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믿는 가치가 그들의 시대에도 지속할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만 천천히 읽어도 가치관이 변하는데 어떻게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가치관을 자식에게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제 가치관도 환갑이 넘어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쓸수록 모든 가치가 사피엔스의 상상의 산물이란 것을 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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