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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16. 2020

혼자 여행 다니면 좋은 점

완벽한 자유가 아니고 좀 불편한 자유를 만끽한다



내 주변을 맘대로 어질러도 괜찮다.
호텔이건 호스텔이건 아니면 에어비앤비 건 모든 숙소는 다 다르다. 변기나 샤워꼭지의 구조와 손잡이 방향도 다 다르다. 심지어 같은 호텔에서도 화장실의 위치나 옷장의 배치가 방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숙소를 옮기게 되면 낯설고 심지어 약간 당황스럽다. 캐리어 혹은 배낭을 메고 호텔을 첵인한다. 방을 배정받아 들어가면 일단 짐부터 풀어야 한다. 친구와 둘이 한 방을 사용할 경우(숙박비 아끼려고) 일단 각자 사용할 침대를 정하면 각자의 영역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자신의 영역이라도 너무 정리정돈 없이 옷이나 물건 등을 너저분하게 늘어놓기는 좀 그렇다. 어릴 때는 엄마에게, 결혼하고는 아내에게 워낙 잔소리 들어선가 싶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눈치 볼 사람도 없으니 맘대로 늘어놓아도 된다. 그러나 무엇을 어디 두었는지는 나는 다 안다. 배낭 부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야 너무 뻔하다. 나는 절대 숙소의 서랍을 사용하지 않는다. 서랍 안이 깨끗할 리도 없지만 서랍 속에 물건을 두었다가는 떠날 때 놓고 갈 위험이 커진다. 문이 달린 옷장도 혼자 다닐 때는 가능한 사용하지 않는다. 의자에 걸거나 트윈룸의 사용 안 하는 침대에 잔뜩 늘어놓는다. 쉽게 눈에 뜨이게. 이런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다. 심지어 롬 메이드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방 청소도 안 시킨다. 방 청소를 시키려면 나름 정리하고 시켜야 하니까. 3박 정도는 ‘Do not disturb.’를 외출할 때도 항상 문 손잡이에 걸어 놓는다. 저렴한 숙소는 이런 팻말이 원래 없다. 그런 경우에는 프런트에 꼭 주지시킨다. 방 청소하지 말라고. 내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고등학생 때 대학생인 사촌 형 집에서 같이 한 방에 잔 적 있다. 형은 외아들이다. 아침에 내가 먼저 깼다. 잠자리가 바뀌었으니 선잠 자고 깬 것이다. 내 인기척에 형이 부스스 일어나는데 팬티가 없다. 그때 충격이었다. 팬티 벗고 자면 시원하고 좋단다.

혼자 출장 가거나 여행 가면 나도 사촌 형처럼 아랫도리를 벗고 자봤다. 익숙하지 않으나 역시 시원하고 좋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참 시원했겠다 싶다. 그러나 잘 때 위 속옷은 꼭 입어야 한다. 배가 차면 다음 날 장이 안 좋아 설사하기 쉽다. 아무리 더워도 배는 꼭 가리고 잔다.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유명한 즐길거리를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트립어드바이저를 보면 숙소, 음식점 그리고 즐길거리를 추천한다. 세 가지밖에 없다. 여행의 구성 요소가. 이제는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추천하는 그런 즐길거리가 나와 맞지 않는다. 나이에 따른 체력의 문제도 있거니와 별로 흥미도 안 생긴다. 유명한 놀이동산 같은 곳에서 즐거움을 느낄 리 없다. 그냥 일상을 떠나왔다는 것에 만족하고 혼자 잘 지낸다. 때론 해본 적 없는 묵언 수행하는 기분이다.


전 세계 웬만한 여행지 숙소와 음식점에 와이파이가 빵빵하다. 혼자 다녀도 심심할 틈이 없다. 정보혁명이 가져온 혜택이다. 사피엔스는 결코 심심하지 않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적기에(완전히 없지는 않다.) 생각할 시간이 많다. 우아한 노인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렇게 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잘 산 것인가? 잘 살고 있는가?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많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죽어도 요양원에는 안 가겠다면 그전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엊그제 이란이 실수로 격추한 우크라이나 비행기에 내가 타고 있었다면 지금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여행 중에 사고나 심장마비로 죽으면 소위 객사라고 한다. 과연 객사가 끔찍한 것일까? 요양원에서 죽는 것보다 나쁜 것일까? 나처럼 여행을 많이 다니면 객사의 위험도 남보다 큰데 객사를 대비하여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답은 여행자보험.


그래서 이즈음은 출발 전에 꼭 보험 든다(참고로 출발 뒤에는 보험회사가 안 받아준다.)

결국 자유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육체적 자유뿐 아니라 정신적 자유가 무엇인지도. 그러나 음식을 포함한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기에 사실 좀 불편하다. 그런 불편함 때문에 혼자 여행이 난 최대 3주인 것 같다. 2주 정도가 지나면 집에 가고 싶다. 익숙한 음식이 그립고 다음 달 돌잔치가 다가오는 외손자도 보고 싶다. 소확행의 중요함과 절실함을 마지막 일주일 동안 충분히 느낀다.

소확행이 결코 작은 행복이 아님을 절감한다.
그렇지만 좀 불편한 자유를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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