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꾸다 잠이 깼다.
어제의 담배 타르와 미세먼지들이 가래로 목에 걸려 있다. 일단 화장실로 가 가래를 뱉고 오줌을 눈다. 혹시 목이 아프지는 않은지 살며시 침을 삼켜본다. 아직 코로나가 내게 오지 않았다고 안도한다. 몸 컨디션이 괜찮다. 이렇게 얻은 하루가 시작이다. "또 한주 간의 생을 부여받고...." 하던 목사님의 주일예배 축도가 생각난다.
또 하루의 생을 부여받고....
코로나 때문에 대학은 2주 늦게 개강했다. 그러나 대면 수업은 하지 말고 2주 동안 동영상 강의를 만들어하란다. 그러나 초중고의 개학이 5주 늦게 시작한다니 아마도 2주 정도 더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실습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실기실습을 어떻게 동영상 강의로 만드냐고 아우성이다. 2개 내지 3개 분반을 가르치던 교수들은 하나의 동영상 녹화로 두세 반을 처리하는 즐거움에 동영상 강의 좋단다. 한 때 사이버 대학교가 대세인 듯 떠오른 적이 있다. 많은 사이버 대학교가 생겼었는데 지금은 다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수학능력시험이란 절박한 문제를 풀기 위한 인터넷 강의는 의미가 있지만 급박함이나 절실함이 없는 대학생을 위한 사이버 강의는 별 효용이 없다. 특히 질문이 없는 한국의 대학생들에게는.
개강은 했으나 오히려 시간이 많아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느라 모임도 다 취소되었고, 목욕탕 가서 사우나 하기도 불안해 망설이는 중이다. 혹시 내가 바이러스를 갖고 있을지 몰라 연로하신 아버지를 만나는 것도 조심스럽다. "내일 해도 되는 일을 오늘 하지는 말자.”란 원칙을 갖고 사는 나지만 엄청 많아진 시간이 내심 부담스럽다.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이런 내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학교도서관도 문을 닫았지만 대출은 해준다. 전화나 온라인으로 대출신청을 하면 문자메시지가 온다. 대출 준비가 되었으니 찾아가라고. 참 친절한 도서관이다. 스티븐 핑커의 책을 두 권 빌렸다. 이렇게 두꺼운 책인지 몰랐다. '우리 본성의 착한 천사'는 거의 1500페이지다. 백과사전보다도 두껍다. '빈 서판'은 900페이지에 이른다. 한 권은 집에, 한 권은 학교에 두고 읽는 중이다.
역시 유대인이고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핑커는 대단하다. 평생을 진화심리학에 매진했다지만 어떻게 이런 두꺼운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썼는지에 감탄하고 있다.
스티븐 핑커는 1954년생이다. 나보다 겨우 네 살 많은 교수의 연구업적의 결정체(2011년에 썼다)에 감탄하면서 나도 명색이 교수인데 하고 반성 중이다. 물론 나는 전공이 공학이고 스티븐 핑커만큼 머리가 좋지 못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지만...
구약성경 여기저기 보이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증거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최소한 일주일은 즐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