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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04. 2020

코로나 이후

출석인정투쟁의 완벽한 무력화


학과 학생장이 학과장인 나를 찾아왔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굳이 대면할 필요가 있냐고 마스크를 쓴 채 물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고....

찾아온 요지는 이랬다. 교무처에서 기말고사를 무려 4주에 걸쳐 가능한 대면으로 시험을 치러 공정한 평가를 하라 했는데, 대학교 총학생회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기말고사를 온라인과 오프라인 어느 쪽을 선호하냐고 설문한 결과 90% 이상의 학생들이 온라인을 선호했단다. 이러한 결과를 학과 교수님들이 감안하셔서 기말고사 형태를 결정하셨으면 좋겠단 얘기를 하러 왔단다.

그렇게 온라인을 선호하면 나와의 면담도 당연히 온라인으로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일단 야단부터 쳤다.

Closed book 시험과 open book 시험 중에 어느 것을 선호하냐고 학생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open book이다.

온라인 시험과 오프라인 시험 중에 어느 것을 선호하냐고 학생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온라인이다.

Open book 시험이 학생 입장에서 부담이 적다.

온라인 시험이 학생 입장에서 부담이 적다.

부담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시험공부를 덜해도 표가 안나는 것이다.

코로나는 굳이 교수와 학생이 대면 수업을 할 필요가 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학생이 대학교를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학점을 받아 졸업장을 손에 쥐고 사회로 나가기 위한 것이다. (물론 교양을 쌓아 성숙한 민주 시민이 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꼭 대학교를 다녀야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으로 이를 성취할 수 있다면 굳이 오프라인 대면 수업을 할 이유가 없다.

코로나 때문에 굳이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공간에 존재하지 않아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들도 알았다. 코로나 때문에 생긴 일상의 변화가 스트레스를 주긴 하지만, 주된 일상이던 대면 수업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감소시킨 면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긴 하지만 인간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 모든 조직에는 이런 스트레스가 있다. 학교라는 조직에도 직장이라는 조직에도 가장 큰 스트레스는 사람으로부터 온다.

코로나 이전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출석이었다. 내 수업에서는 출석이 중요하지 않다고 거의 악을 쓰며 여러 차례 강조해도 학생들은 내 강의 내용보다 자신의 출석 인정여부에 거의 목숨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코로나는 이런 출석인정투쟁을 완벽하게 무력화시켰다. 출석이 의미가 진정 없어졌다.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 중에 밤낮 구분 없이 심지어 장소에도 구분 없이 출석 인정은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일주일 중에 아무 때나 교수의 동영상 강의를 정해진 시간 이상 틀어 놓기만 하면 출석 인정이 된다. 그래서 가끔 실시간 화상 강의하는 교수의 열정은 학생에겐 부담스러울 뿐이다.

이번 학기는 많은 학교에서 절대평가가 허용된다. 갑작스러운 온라인 강의 평가의 부담(학생과 교수)을 덜기 위한 조치다. 이는 모든 학생에게 A 학점을 줘도 무방하단 얘기다. 모든 학생이 A학점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학생을 평가하여 학점을 주는 것은 교수들의 신성불가침(?) 권한이다. 가끔 이의를 다는 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의를 달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학생을 나는 지난 24년간 보지 못했다.

내가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는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놓지 않던 사람이 자신의 부하에게 살해당한 10.26으로 중간고사 이후 휴강이었지만 모든 학점을 받았고, 4학년 1학기 때는 무주공산이 된 권력을 찬탈하고자 한 사람들이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5.18로 역시 학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학점은 그런 것과 무슨 상관있냐는 듯이 꼬박꼬박 나왔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받은 학점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저 등록금만 내면 학교는 학점을 주었다. 온라인 강의조차 할 수 없던 시대에도....

시대가 변하고 있다.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온라인 학점이나 대면 수업 학점이나 성적증명서에서 구분할 수 없으니 일반 대학교와 사이버 대학교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일반 대학교의 등록금은 사이버대학교 등록금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다. 강의하는 교수나 강사들도 지금 만큼  필요 없을 것이다. 어쩌면 EBS에 대학교 모든 과목의 동영상 강의가 등록되어 전국의 모든 대학교가 이용할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가기 싫어하는 많은 어린이들은 동영상 강의를 통하여 홈스쿨링을 할 것이고, 중고등학교의 많은 학교 폭력 및 따돌림 문제들도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철밥통이라고 욕하면서도 선호하는 직업인 교사와 교수들의 절대적인 숫자가 줄어들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강의 잘하는 교사와 교수들만이 EBS에서 강의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존속 가능성을 의심받는 회사처럼 많은 학교가 지속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코로나 덕분에 빨리 진행할 것이다. 특히 교육현장과 교육산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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