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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27. 2020

제주도 올레 11길

사람들은 바다를 동경한다.



숙소가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여름방학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불면증이 생긴 것으로 보아 내게도 우울증이 왔다. 너도나도 좋다고 소문난, 그래서 오히려 더 관심 없던 올레길을 순례길이라 생각하고 걷기로 마음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기라도 해야 우울증이 더 심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열이틀을 제주도에 머물 생각으로 일단 비행기표를 끊었다. 한동안 비어 있던 집(주인은 친구)에 머물러도 된다 하여 제주도 숙소가 결정되었다.

신평리는 올레 11길의 딱 중간에 위치한다. 대부분의 올레길들이 바다를 끼고 조성되어 있는데 11길은 예외다. 그래서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 웬만한 올레길은 다 걸었고, 모든 올레길을 완주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길을 걸을 가능성이 흔치 않다. 사람들은 바다를 동경한다. 나도 첫 올레길을 선택한다면 이 길을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바다를 동경하니까...

금요일 오후에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신평리 부근 영어마을에 있는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집 열쇠를 받아야 한다. 집주인이 년세(제주도의 단독주택은 월세보다 년세가 대세란다) 놓아 달라고 부동산사무소에 키를 맡겨놓았다. 부동산 아저씨가 다섯 시까지는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저녁 비행기로 아저씨는 육지로 나간단다. 육지에서 온 나는 시간 여유가 있어 큰 배낭 메고 공항에서 버스를 탔다. 151번 빨간 버스는 좌석버스다. 이미 두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으나 신제주에서 금세 내리고 영어마을까지 승객은 나 혼자였다. 뒷자리에 혼자였기에 마스크 벗었다가 기사 아저씨한테 한소리 들었다. 마스크 항시 착용해야 한다고. 이렇게 승객이 없어도 버스가 시간 맞춰 운행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영어마을은 이미 학교들이 방학을 해서 썰렁했다. 주변의 주거단지들에도 거의 사람이 없는듯했다.

부동산사무소에서 신평리까지 3 킬로를 걸어갈 생각이었는데 부동산 아저씨가 굳이 태워주신단다. 제주도에 걸으러 왔는데... 작년 가을 이후 내내 비어 있던 집은 좀 황당했다. 잔디밭은 키 큰 잡초들로 무성했고 집 안은 죽은 벌레들의 시체와 곰팡이 그리고 먼지로 덮여있다. 거실 바닥과 주방 부근만을 진공청소기 돌리고 약간의 걸레질로 일단 오늘을 버티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을 편의점 부식거리로 대충 해결하고 길을 나섰다. 신평리는 올레 11길의 중간이라 좌우 선택을 해야 한다. 좌측은 모슬포항에서 길이 끝나고 우측은 내륙의 무릉리에서 올레 12길과 연결된다. 당연히 좌측이다. 바다 때문이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많다. 양산으로 갖고 나온 우산이 거추장스럽다. 마을을 벗어나자 비닐하우스와 밭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제주도의 비바람을 견디기 위한 비닐하우스들이 제법 견고해 보인다. 익숙한 반원형의 비닐하우스가 아니다. 레이다 기지를 보며 대로를 따라 걷다 처음 마주한 곳은 정난주 마리아 묘지다. 무척 큰 야자나무 같은 소철나무들이 열 맞춰 서 있다. 그 높이가 이 곳이 범상치 않은 곳이란 것을 증명하는듯하다. 아무도 없다. 아주 잘 정돈되어 있는 무덤이다. 망자들의 한이 서린 이런 장소에서는 표현 못할 신성함이 느껴진다. 큰 십자가나 신전이 주는 엄숙함이 느껴진다.


난 이 장소에서 우아함을 느꼈다.


최근에 조성된 이 공간 설계자의 안목에 감탄했다. 깰 수만 있다면 새벽 같은 시간대에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아 정난주는 다산 정약용의 조카딸이다. 남편은 황사영인데 어릴 때부터 총명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러나 천주교에 입교한 후 문제가 생겼다. 황사영은 결국 능지처참 형을 당하고 가족들은 전부 뿔뿔이 귀양을 갔다. 17살에 얻은 두 살 난 아들은 추자도에 정난주 본인은 제주도로 보내졌다. 추자도에서 두 살 난 아들과 생이별하는 정난주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37년간 관노비 생활을 했다고 한다. 처참하게 불행했던 그녀의 인생이 지금 여기 잠들고 있다.

이 일대가 예부터 공동묘지였나보다. 천주교 묘지를 포함하여 숱한 묘지들을 지나 오름인 모슬봉에 올랐다. 정상은 레이다 기지가 있어 접근금지지만 모슬포항과 송악산이 잘 보이는 자리가 있다. 경치로는 이 자리가 올레 11길의 백미라 할 만하다. 약간의 숲길을 지나 가파도와 마라도를 보면서 계속 완만한 내리막길이라 전혀 힘들지 않다. 올레 11길을 한 방향으로 한 번만 걷는다면 이 길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을 강추한다.

늦은 점심을 모슬포항 방어거리 횟집에서 했다. 회덮밥을 주문했다. 난 비빔밥과 같은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혼자 먹을만한 음식이 그것뿐이었다. 비빈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고추장에 다 함께 비비고 나면 고추장 맛이 워낙 세서 음식 맛이 순 고추장 맛이다. 회덮밥도 마찬가지다. 생선회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는 회, 야채 그리고 밥을 따로따로 준다. 그래서 덮밥이 아닌 따로덮밥이다. 따로국밥처럼... 싱싱한 히라쓰회가 있는데 그냥 밥만 먹을 순 없어 소주도 주문했다.

초등학생 딸과 아들을 둔 부부가 좀 떨어진 테이블에서 식사를 끝내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인데도 혼자 소주(그것도 센 한라산소주) 두병을 거의 다 해치운 아빠가 딸에게 묻는다.
‘뭐 해주까? 뭐든지 해줄 수 있으니까 다 말해봐?’

반응 없는 딸에게 몇 번씩 아빠는 재촉한다. 마주 앉은 엄마는 아무 말없이 남편만 보고 있다. 이미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중이라 손님은 그 가족뿐이고 기분이 더 이상 좋을 순 없는 아빠의 말소리는 제법 컸다. 딸바보인가 보다. 아빠와는 등을 반쯤 돌리고 벽에 걸린 TV를 보며 지루해하던 딸은 
‘이제 그만 가자!’
결국 엄마가 일어나 계산대로 간다.

이튿날은 신평리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았다. 오른발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마을을 벗어나자 금세 숲길이 나온다. 곶자왈이란다. 곶자왈은 곶(숲)과 자왈(덤불)의 합성어다. 소위 버려진 땅이다. 제주도에 이런 지역이 제법 산재해 있다. 지금은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 표지도 보이고 진드기 조심하라며 보건소에서 설치한 기피제 분무장치도 있다. 반바지 차림으로 나온 것을 후회하며 다리에 기피제를 잔뜩 뿌렸다. 나무 위에 있던 진드기가 밑으로 동물이 지나가면,뛰어내려 피를 빤다고 들었다. 모자도 썼지만 양산 대용 우산을 쓰고 진드기를 피해 곶자왈 군락지를 한참을 빠르게 걸었다. 곶자왈이 끝나면서 바로 인향동 마을이다. 큰길을 조금 걷자 제법 큰 마을인 무릉2리에서 올레 11길이 끝났다. 올레 12길이 바로 연결되는데 발가락이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남들은 하루 만에 걷는 길을 난 이틀에 나눠 걸었다.


정난주마리아 묘지
산방산
모슬봉
한라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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